[백영옥의 말과 글] [374] 사이버 멍석말이
관심이 돈인 세상이다. 관심경제, 관종, 어그로 같은 단어 역시 일상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방송이나 언론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거나 정치권의 콜을 고사하는 식인데, 모두 지금의 일상이 소중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흥미로운 건 그들 모두에게서 등장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싫다’는 말이었다. 나락은 불교에서 지옥을 뜻하는 여러 이름 중 하나로 산스크리트어인 ‘나라카(Naraka)’에서 왔다.
몇 년 전부터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국에선 주로 손절 문화를 뜻하고, 어떤 인물이나 집단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단하거나 구독을 취소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파급력이 큰 유명인의 발언과 행동에 책임을 요구하는 건 긍정적이다. 문제는 때로 그 기준이 다르고 너무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좌표가 찍힌 인물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세(有名稅)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세금이다.
평범한 개인은 약하지만 군중은 강하다. 나쁜 일일수록 혼자하면 두렵지만 함께 하면 더 강력해진다. 팩트 체크를 우선시하는 기성 언론과 달리 사이버 멍석말이는 마녀사냥에 가까워 누군가를 불태워야 끝난다. 군중은 그들의 스타를 높은 나무 위에 올려놓고 우러러보다가 조그만 잘못이라도 있으면 다 같이 몰려가 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린다. 그리고 우러러볼 새로운 대상을 찾는다.
이때 환호와 미움은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다. 어쩌면 신선한 환호와 미움의 대상을 사냥하는 것에 가깝다. 게다가 이런 군중 심리를 이용해 조회 수 이상의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엄청난 악플에도 끊이지 않는 연예인 부동산의 비포 애프터 기사가 대표적이다. 왜 이런 일이 빈번해졌을까. 성장이 멈추고 성공이 희귀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의 추락을 바라보며 자신이 상승한다는 느낌을 가지는 시대는 모두에게 비극이다. 그 부메랑이 언제 나를 칠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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