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56] 아기 돼지 요리
아기 돼지 요리는 기원이 꽤 오래됐다. 고대 로마나 중국에 기록이 있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와 그리스, 남미,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섬 등에서 보편적인 요리다. ‘서클링 피그’로 불리는 통돼지구이는 스페인에서 발달했다. ‘코치니요(Cochinillo·젖을 떼기 전의 아기 돼지) 아사도(Asado·불에 구운 요리)’라고 부르는데, 국제적으로 보편화되면서 영어로 젖을 빤다는 뜻의 ‘서클링(suckling) 피그’로 통용된다.
이 요리의 성지는 스페인의 서북부 카스티야이레온(Castilla Y Leon)지방이다. 이 지역에서는 플라토라 불리는 넓은 고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군데군데 돼지목장이 산재한다. 하몬(Jamon)을 이베리코 품종의 흑돼지로 만들듯이, 최상의 서클링 피그를 위한 돼지도 한두 종의 정해진 품종으로 길러진다. 목장에서 어미돼지는 도토리나 야생버섯 등 자연의 재료만 먹고 자라며, 아기 돼지는 도축 전까지 어미젖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도 현지인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전문점이 있다. 구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고비아에 위치한 ‘호세 마리아(Jose Maria)’다. 창업자인 호세는 1980년대 초반 돼지의 유통 경로와 위생 상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는 품종과 기르는 방식을 인증받은 농장으로부터만 돼지를 공급받았다. 또한 돼지가 3주가 되기 전에 도축해 4.2~4.7kg의 고기를 얻을 때 맛이 가장 좋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호세의 레스토랑에서는 화씨 200도의 오븐에서 다른 양념이나 허브 없이 물과 소금만 첨가해 돼지를 굽는다. 통으로 구워진 돼지는 손님에게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접시를 세로로 세워 자른다. 고기가 그만큼 부드럽다는 걸 보여주는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일반 돼지고기보다 지방이 40% 정도 적은 서클링 피그는 겉바속촉의 황홀한 맛이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넓은 옥토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식재료가 풍부한 나라다. 호세 마리아는 전통음식의 본질과 가치를 격상시키는 고민을 했다. 그의 노력을 필두로 오늘날 서클링 피그는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전 세계의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적, 전람회 출신 故서동욱 추모 “모든 걸 나눴던 친구”
- 선관위, 현수막에 ‘내란공범’은 OK…’이재명 안 된다’는 NO
- 독일서 차량 돌진, 70명 사상…용의자는 사우디 난민 출신 의사
- 전·현직 정보사령관과 ‘햄버거 계엄 모의’...예비역 대령 구속
- ‘검사 탄핵’ 해놓고 재판 ‘노 쇼’한 국회…뒤늦게 대리인 선임
- “너무 싸게 팔아 망했다” 아디다스에 밀린 나이키, 가격 올리나
- 24년 독재 쫓겨난 시리아의 알-아사드, 마지막 순간 장남과 돈만 챙겼다
- 검찰, 박상우 국토부장관 조사...계엄 해제 국무회의 참석
- 공주서 고속도로 달리던 탱크로리, 가드레일 추돌...기름 1만L 유출
- “이제 나는 괜찮아, 다른 사람 챙겨줘” 쪽방촌 할머니가 남긴 비닐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