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남녀,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다···칸 감독상 받은 고메스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특별전 열어
칸영화제 감독상 탄 ‘그랜드 투어’ 등 상영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 중심의 영화제”
1917년 미얀마 랑군(현 양곤)에서 근무하는 대영제국 공무원 에드워드는 약혼녀 몰리와 7년 동안 만났다. 에드워드는 몰리와의 결혼이 가까워지자 도망친다. 에드워드와 몰리는 쫓고 쫓기며 여러 나라를 여행한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중국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모험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실과 상상이 구분되지 않는다. 여러 나라의 풍경과 전통 문화가 흑백과 컬러 화면을 번갈아가며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포르투갈 출신 미겔 고메스 감독의 <그랜드 투어>(2024)는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고메스 감독 특별전을 열고 장편영화 6편을 상영한다. 한국을 처음 찾은 고메스 감독은 4일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상에 영화가 중심이 아닌 영화제가 많은데 부산영화제는 영화가 중심이어서 좋다”며 “‘영화제는 이런 곳이어야 한다’고 제시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랜드 투어>에 대한 아이디어는 고메스 감독이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작품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고메스 감독도 결혼을 앞뒀을 때여서 ‘톰과 제리’ 같은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실제 20세기 서양에선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에서 끝나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이었다. “우리는 시나리오 작업 전에 아시아에 대한 ‘그랜드 투어’를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미지와 소리를 많이 수집했어요. 그런 이미지에 대한 반응으로 각본을 썼습니다.”
에드워드와 몰리가 도착한 나라에 따라 내레이션의 언어도 바뀐다. 고메스 감독은 “<그랜드 투어>는 여행에 대한 영화”라며 “다른 지역으로, 다른 시간으로, 다른 언어로의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엔 인형극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고메스 감독은 “아시아에는 풍부한 인형극의 유산이 존재한다”며 “에드워드와 몰리의 여행은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하나의 인형극”이라고 말했다.
고메스 감독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불분명한 몽환적 세계를 그려왔다. 전개도 결말도 수수께끼처럼 관객에게 해석을 열어놓는 편이다. 고메스 감독은 건전지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극이 있어 전기가 발생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영화에는 현실과 상상(fiction)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며 “현실과 상상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는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현실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가 가진 미덕입니다. 저는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걸 포기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고메스 감독은 리스본영화연극학교를 졸업한 뒤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다. 장편영화 데뷔작인 <네게 마땅한 얼굴>(2004)로 이름을 알렸고, <친애하는 8월>(2008)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타부>(2012)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자 고메스 감독의 영화는 세계 곳곳에 배급되기 시작했다. 상영시간이 383분에 달하는 <천일야화>(2015), 공동 연출한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2021)를 거쳐 <그랜드 투어>로 필모그래피의 정점을 찍었다.
“저는 영화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 영화 제작자가 될 수 없었어요. 졸업은 했지만 실직 상태였습니다. 영화평론가로 일했지만 처음부터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영화감독이었죠. 그러다 단편영화 제작 프로젝트에 당선됐는데 아마 심사위원들이 ‘그렇게 신랄하게 비평하더니 어디 만들어 봐라’라고 뽑아준 것 같습니다.”
<그랜드 투어>를 촬영하던 2020년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역경도 많았다. 중국 국경이 폐쇄되자 고메스 감독은 포르투갈로 귀국했다. 2년을 기다리다 중국 현지에 촬영팀을 꾸려 포르투갈에서 원격으로 촬영을 감독했다. 일부 장면은 이탈리아 로마와 포르투갈 리스본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일각에선 <그랜드 투어>가 서양이 동양을 대상화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영화를 보면 관객마다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인이나 베트남인처럼 영화를 만들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촬영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에는 아시아에 대한 아주 전형적인 이미지도 있죠. 하지만 최대한 흥미롭게 다루려고 했어요.”
부산 |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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