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그이의 옛 책을 펼쳤더니 우표 붙은 엽서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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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독서인 남녀가 결혼했다.
둘은 취향도 비슷해서 엇비슷한 책들이 많았지만 둘의 책장은 한 집에 따로 배치돼 있었다.
책 '서재 결혼 시키기'는 한 부부가 각자의 책장을 합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독특한 에세이다.
"책들의 별거 상태"를 끝마치고 사유의 결과물인 책을 한데 모으는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이 타자의 책장을 온전히 수용하는 일의 의미를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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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독서인 남녀가 결혼했다. 둘은 취향도 비슷해서 엇비슷한 책들이 많았지만 둘의 책장은 한 집에 따로 배치돼 있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나자 공간이 부족해졌다. 결국 두 사람은 '장서 합병'이라는 대업을 결심한다. 나뉜 서재를 하나로 합치기로 한 것이다.
책 '서재 결혼 시키기'는 한 부부가 각자의 책장을 합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독특한 에세이다. "책들의 별거 상태"를 끝마치고 사유의 결과물인 책을 한데 모으는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이 타자의 책장을 온전히 수용하는 일의 의미를 되짚는다.
저자 앤 패디먼은 남편 책장을 보며 분개했다. 그이의 책장은 '민주적으로'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령 남편이 읽은 소설들은 '문학'이란 이름 아래 한데 뭉쳐져 있었다. 남편은 '병합파'였다.
반면 저자는 '세분파'였다. 책들은 국적에 따라, 주제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분할돼 있었다. '책장 목록을 어떤 기준에 의해 분류하고 통합할 것인가'는 두 사람에게 예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이 사소해 보이는 일로 싸운다. 하기야 '치약을 위에서부터 짤 것인가, 아래부터 짤 것인가'란 문제로 다투는 부부도 흔치 않았던가. 장서를 합치는 건 대단히 문제적인 일이었다.
부부는 일단 책 전권을 마룻바닥에 정렬시킨다. 무려 50권이 겹쳤다. 둘은 '하드백(양장본)이 페이퍼백(표지가 얇은 책)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정립했다. 한 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여백에 써놓은 메모가 있으면 그 책을 우선한다'는 원칙이 추가됐다.
그 결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남편의 것이,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저자의 것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책을 여닫으면서 두 사람은 배우자의 책에 담긴 시간의 밑줄과 손때, 메모를 응시하게 된다. 어떤 책엔 저자에 대한 헌사가 적혀 있었다. 어떤 책에선 우표가 붙은 엽서도 떨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과거를 '염탐'하면서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됐다. '서재 결혼'은 단지 물질적인 책의 결합만은 아니었다. 그건 자신을 만나기 전의 상대의 과거를 엿보고 받아들이는 일이었다고 책은 쓴다.
"이렇게 나의 책과 그의 책은 우리 책이 되었다. 우리는 진정으로 결혼을 한 것이다."
때로 책장은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주는 증거가 되곤 한다.
우리가 타인의 책장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건 단지 그가 높은 학식이나 지성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볼품없는 책장이더라도 그가 한때 고민과 사유의 시간을 건너왔다는 사실을 책장 목록이 무언으로 속삭여줄 때가 있다. 책은 내 손과 내 눈을 거치면서 '나만의' 것이 된다. 그런 책들은 빛이 싯누렇게 바래도 가치가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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