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비밀번호 때문에 30차례나 찔러" 피해자 통장서 돈 뽑은 유력 용의자, 무죄 ?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10월 04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이서연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월드컵 열기로 그 어느 때보다 떠들썩했던 2002년 당시 31살이던 남성 a씨는 은행 ATM기에서 현금 296만 원을 인출했습니다. 통장에 남은 전액이었죠. ATM기에서 돈을 뽑은 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앞서 들으신 것처럼 남성 A씨는 두 번의 비밀번호 오류 끝에 간신히 인출에 성공했습니다. 뭐 이거 역시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 A씨는 이 일로 한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죠. 남성 A씨가 ATM기에서 뽑았던 현금 296만 원 그 돈이 든 통장의 진짜 주인은 남성 A씨가 아니었습니다. 해당 남성이 돈을 인출하기 바로 전날 실종돼 살해당했던 20대 여성 B씨였죠. 빨간색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남성 A씨의 모습은 은행 CCTV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남성 A씨를 찾는 일 그다지 쉽지 않았다고 하죠.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사건의 엑스파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이서연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이서연 변호사(이하 이서연):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 이서연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2002년 부산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20대 여성이 사라졌다는 실종 신고가 들어왔죠?
◇이서연: 네 그렇습니다. 당시 피해자는 22살로 대학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산 태양 다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2002년 5월 21일 밤 10시에 일을 마친 후 곧장 집으로 향한다고 했으나 귀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생이 걱정된 피해자의 언니는 동생을 찾아 나섰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사건 9일 뒤인 5월 30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신고 다음날 5월 31일에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원화: 바로 다음 날 시신으로 결국 발견이 됐군요.
◇이서연: 네 피해자의 시신은 부산 해안가에서 마대자루에 담긴 채 발견되었는데요. 당시 피해자의 시신은 옷가지가 벗겨진 채 손과 발목, 무릎이 청테이프로 묶여 있었고, 흉부와 복부를 비롯해 팔과 허벅지 등 몸 수십 군데가 흉기로 난자당한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피해자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찔린 상처 40여 곳 중 2~3곳만 치명상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위협 손상으로 분석됐습니다.
◆이원화: 이상하네요.
◇이서연: 범죄심리학자들은 범인이 피해자로부터 무언가를 알아낼 목적으로 흉기 끝으로 피해자를 수십 차례 찌르며 위협한 것으로 보았으며, 성폭행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범인의 목적은 돈일 확률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이원화: 말씀해 주신 대로 피해자로부터 뭔가를 알아내려고 심하게 고문한 거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데 20대 초반에 아주 평범했던 여성이라고 해주셨잖아요. 경찰 수사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됐습니까?
◇이서연: 경찰은 피해자가 매우 검소하고 매달 적금을 드는 등 저축을 잘했던 점, 그리고 항상 통장과 도장, 신분증을 가지고 다녔던 점 등에 주목하여 피해자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피해자의 주변 인물에 대한 집중 탐문을 벌였고, 피해자가 일하던 다방의 단골손님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의 방향성을 완전히 뒤흔든 사건이 생기게 됩니다. 경찰이 피해자의 금융 거래 내역을 확인하다가 전혀 다른 곳에서 용의자가 발견된 것입니다.
◆이원화: 뭐였죠? 어떤 게 발견됐을까요?
◇이서연: 피해자가 실종된 다음 날 한 남성이 피해자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는 장면이 은행 CCTV에 포착된 것입니다. 심지어 돈이 인출된 은행은 피해자가 일하던 다방에서 불과 1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원화: 대담하네요.
◇이서연: 해당 남성은 은행 ATM에서 현금 인출을 시도하다가 비밀번호 오류로 두 번 실패한 끝에 간신히 현금 인출에 성공했습니다.
◆이원화: 아까 그 부검 결과랑 결부를 시켜보면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30곳이 넘게 칼로 위해를 가하고 고문을 했다. 이랬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서연: 네, 사실 그게 아니라면 이 남성이 피해자의 통장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점을 설명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또 이 남성이 피해자의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한 지 20일쯤 지난 2002년 6월 12일경에 이번에 여성 2명이 은행을 방문하여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하고 500만 원을 인출해 가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원화: 창구에까지 간 거네요. 대담하게
◇이서연: 네 경찰은 이 두 여성에 대한 CCTV 또한 확보를 했는데요. CCTV에는 두 여성이 피해자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통장 비밀번호를 바꾸는 수법으로 피해자의 적금을 해지하고 500만 원을 인출해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이원화: CCTV 속 남성과 두 여성 잡혔습니까?
◇이서연: 안타깝게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현상금을 걸고 수배 전단지를 배포하고 한 공개수배 방송에서 사건을 방송하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방을 찾을 수 없어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원화: CCTV 화면까지 확보됐고 등장 인물도 3명이나 되고 또 은행에서 인출까지 했으면 잡힐 법도 했는데 그중에 한 명도 잡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가면서도 너무 속상합니다.
◇이서연: 네 CCTV 영상 기록이 있는 만큼 비교적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됐는데 용의자들을 찾을 수조차 없으니 정말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이원화: 그러니까요. 물론 이제 20년 전이지만 2002년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네요.
◇이서연: 그런데 2015년 8월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 사건 또한 공소시효가 사라지게 되었고, 부산경찰청의 장기 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이 이 사건을 재수사하게 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장기 미제 사건 수사팀은 2016년 2월 25일경에 공식 SNS에 간략한 사건 개요와 용의자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공개 수사에 나섰는데요. 이 게시물은 공개된 지 이틀 만에 좋아요가 4만 건을 기록하고 네티즌들 또한 나름의 추리를 공유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원화: 가족들 입장에서는 이번에는 꼭 수사에 진전이 있길, 진범을 잡길 굉장히 고대했을 것 같습니다.
◇이서연: 네 그렇습니다. 경찰 또한 수배 전단을 뿌리는 등 끈질긴 수사 끝에 결국 2017년 8월 이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인 남성을 검거하고 현금 인출을 도와준 두 여성 또한 검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원화: 아니 어떻게 그때 못 잡은 용의자들을 잡아낼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진짜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서연: 네 앞서 말씀드렸듯이 수사팀은 SNS에 용의자들의 사진을 올렸는데요. 이를 본 시민의 제보가 경찰의 용의자들을 검거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경찰이 검거한 남성은 2004년 여성들을 흉기로 위협해 청테이프로 묶고 강간하려 한 혐의 등으로 장기간 복역한 뒤 2014년 출소한 전과자였습니다. 그리고 남성의 스마트폰에서는 살인 공소시효, 살인 공소시효 폐지 등을 검색했던 기록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사실은 이 남성은 처음부터 살인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면서 자신은 우연히 피해자의 가방을 주었고 그 안에 들어있던 통장을 이용하여 예금과 적금을 인출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원화: 아니 그러면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답니까? 아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뭐 신키라도 있었던 건가요?
◇이서연: 이 남성은 자신은 우연히 피해자의 수첩과 통장 신분증이 든 가방을 주었고, 피해자가 수첩에 적어둔 피해자 부모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이용해서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 남성은 처음 돈을 뽑고도 아무 일이 없자 평소 알고 지내던 술집 종업원 여성들에게 피해자의 적금을 찾아오면 돈을 나눠주겠다면서 추가 범행을 제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남성의 주장에는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피해자의 통장 비밀번호에는 6이 두 번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피해자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에는 6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 남성과 함께 살고 있던 동거녀도 중요한 진술을 했는데요. 2002년 5월 당시에 자신이 남성을 도와서 물컹한 것이 들어있는 마대자루를 옮겼고 마대자루 안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보였다고 진술한 것입니다.
◆이원화: 이거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사용이 됐을 것 같은데요.
◇이서연: 네 그렇습니다. 정황상 이 동거녀가 함께 옮겼다는 마대자루는 피해자의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이 되었고요. 이 진술은 남성의 강도 살인 혐의에 대한 유력한 증거가 됩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동거녀의 진술과 경찰이 제시한 다른 간접 증거들로 남성을 범인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이원화: 설마 아니겠죠? 무죄인가요?
◇이서연: 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대법원에 시체가 든 것으로 추정되는 마대 자루를 옮겼다는 동거녀의 진술과 남성이 피해자 통장 비밀번호를 알고 돈을 인출했다는 간접 사실만으로는 강도 사실 혐의를 유죄로 증명하기 부족하다고 보아 이 사건을 2심을 심리한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즉, 대법원은 심증은 있으나 범행에 사용된 흉기 등 집정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간접 증거의 유죄 증명력이 약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원화: 누가 봐도 이 남성이 살해한 것 같다 라는 게 합리적 의심이지만 재판부가 왜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긴 하네요.
◇이서연: 네. 사실 원칙적으로는 범죄를 유죄로 인정하는 데에는 한 치의 의혹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입장이 이해가기도 합니다.
◆이원화: 무죄 추정의 원칙이죠.
◇이서연: 앞서 말씀드린 동거녀의 진술은 남성의 강도 살인 혐의에 대한 거의 유일한 증거였는데요. 사실 이 동거녀는 2017년 경찰 조사 당시 처음에는 피해자 시신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마대자루를 본 적이 없다고 진술을 했다가 경찰이 범행 관련 사진 등을 보여주자 남성과 함께 마대자루를 옮겼다며 진술을 번복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원화: 진술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네요.
◇이서연: 네 맞습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남성이 피해자를 감금한 뒤 폭행 협박으로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강도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을 하면서도 강도살인 혐의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고 유일한 증거인 동거녀의 진술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오염되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아 결국 이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원화: 그러면 피해 여성의 통장을 훔쳐서 그 돈을 인출한 그 범죄행위, 그것도 처벌이 안 되는 겁니까?
◇이서연: 네 이 사건은 2002년 발생한 것이기에 검찰이 이 남성을 기소할 때는 이 남성뿐만 아니라 공범이었던 두 여성이 피해자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 공소시효가 이미 모두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안타깝네요. 검찰은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원심이 선고한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판결이 확정된 이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인해 이후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거나 해당 남성이 범행을 자백하더라도 이 남성을 기소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여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원화: 이거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검찰이 너무 섣불리 재판을 진행했던 걸까요? 아니면 재판부가 증거 인정을 너무 엄격하게 했다고 봐야 되나요? 변호사님 혹시 뭐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서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신데요. 이 사건에 한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 사건은 경찰이 오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수사를 해서 범인을 잡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을 받게 되면 이제 DNA 등 과학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열심히 수사해도 결국 유죄 판결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잘못된 신호를 수사기관에게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이원화: 사건 X파일 오늘은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무려 15년 만에 잡아놓고 또다시 미제로 남아버린 부산 태양 다방 살인 사건 짚어봤습니다. 검찰의 합리적 의심과 일말의 의심도 남겨선 안 될 재판부의 증거인 점, 무엇이 더 옳고 그르다 이야기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다시 미제로 남게 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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