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거부에도 재의결된 유일한 법안은? [The 5]

권지담 기자 2024. 10. 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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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대통령 본인과 가족의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법을 통과시켜도 대통령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측근 비리 특검법'을 거부했지만 재의결된 적이 있긴 해요.

대통령의 사적 이해관계자가 수사·재판 대상인 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회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대통령이 거부할 걸 알면서도 계속 법안을 만들어서 올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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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서울 용산 대통령실 전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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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기자가 답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쌍특검법), ‘지역화폐법’이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또 부결됐습니다. 김건희 특검법이 재표결 끝에 부결돼 자동 폐기된 건 두 번째, 채상병 특검법은 세 번째입니다. 임기 반환점을 돌지 않은 윤 대통령은 벌써 11차례 거부권을 써서 총 24개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습니다. 처음 거부권을 쓴 2023년 4월 이후 한두 달에 한 번꼴인데요. 윤 대통령은 왜 이럴까요? 대통령 거부권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할까요? 대통령실을 취재하는 정치부 장나래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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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 윤 대통령은 왜 이렇게 거부권을 많이 쓰는 거예요?

장나래 기자: 윤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다 보니 (정치적 사안도) 사법적 잣대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거부권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의무이자 권한이니, 법으로 해결하겠단 논리가 강한 것 같아요. 야당이 통과시킨 법은 위법이고, 야당의 독주를 두는 건 직무유기란 인식이죠. 소통하고 야당하고 협치하는 정치인의 모습보다는 법조인에 가까운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올 5월께 대통령이 국민의힘 총선 당선자들을 만나서 한 이야기를 보면 거부권을 대하는 윤 대통령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요. 헌법의 권한 안에서 여당을 돕겠다면서 ‘거부권을 활용해서 야당과 대등하게 협상력을 끌어올리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신중하게 써야 할 권리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라고 노골적으로 주문한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니 마구 써도 된다는 논리가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The 2] 대통령 거부권이 필요하긴 해요?

장나래 기자: 대통령 거부권은 입법부인 국회를 견제하라고 있는 거예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균형 있게 국가 권력을 나눠 갖는 걸 삼권분립이라고 하잖아요. 국회가 국정감사나 탄핵소추로 정부를 감시하는 것처럼,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도 거부권으로 입법부인 국회를 견제하는 거죠. 그런데 거부권엔 구체적인 조건이 없거든요. 횟수도 무제한이고요. 그래서 거부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요.

[The 3] 야당이 대통령 본인과 가족의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법을 통과시켜도 이번처럼 대통령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네요. 재표결해도 가결 조건이 높잖아요.

장나래 기자: 전 정권에선 이런 사례가 없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측근 비리 특검법’을 거부했지만 재의결된 적이 있긴 해요. 대통령이 국회로 돌려보낸 법안이 다시 가결된 유일한 사례예요. 그런데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지목된 사람은 청와대 총무비서관, 국정상황실장, 제1부속실장이거든요. 엄밀히 따지면 본인이나 가족은 아니죠.

지금은 윤 대통령 본인과 배우자의 의혹을 수사하는 쌍특검법이 논란이 되고 있잖아요.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야권은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했어요. 대통령의 사적 이해관계자가 수사·재판 대상인 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회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본인·배우자 또는 4촌 이내 혈족·인척의 범죄 혐의와 관련되는 경우 회피 의무를 둔 ‘대통령 거부권 제한 특별법’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했고요.

[The 4]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쭉 거부권을 쓸까요?

장나래 기자: 여론의 눈치를 안 볼 순 없을 것 같아요. 김 여사 특검법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이 60%를 넘었잖아요. 김 여사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계속 나오면서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있고요. 이런 분위기가 조금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거 같은데요. 그동안은 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직후 거부권을 썼거든요. 그런데 (지난 2일) 거부권 행사는 법안이 통과된 지 13일 만에 이뤄졌어요. 윤 대통령이 고심했다고 봐야겠죠.

[The 5] 야당은 쌍특검법을 또 발의할 것 같은데요. 거부권 대결에서 누가 이길까요?

장나래 기자: 글쎄요. 확실한 건 정치권 ‘핑퐁 싸움’이 계속되면 결국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거예요. 서로 내놓은 법에 무조건 반대하고 거부하니 보호받아야 할 약자, 국민을 위한 법은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거든요. 한 마디로 정치가 실종된 상태라고 봐요. 대통령이 거부해 국회에 계류된 ‘노란봉투법’이 대표적인데요. 법안이 정쟁에 갇혀 있다 보니 간접고용 노동자나 배달기사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원론적인 얘기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발하는 덴 야당도 책임이 있어요. 대통령이 거부할 걸 알면서도 계속 법안을 만들어서 올리니까요. 대통령은 또 거부하고요. 생각이 다르더라도 타협해서 최대한 법을 통과시켜보자고 해야 하는데, 대통령도 야당도 너무 극단으로만 가는 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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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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