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파괴의 반복… ‘거대한 빈민가’ 된 옛 이슬람 무역 중심지[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아시아·아프리카 잇는 요충지
제국들에 탐욕의 대상이 된 곳
2차 세계대전후 이스라엘 건국
군사력 앞세워 추방·학살 거듭
하마스의 집권·이스라엘 봉쇄
세상서 가장 큰 야외감옥으로
“대규모 위협을 가할 것, 마을을 포위하고 포격할 것, 주택·재산·물건을 방화할 것, 사람들을 추방할 것, 남김없이 파괴할 것, 쫓겨난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잔해에 지뢰를 설치할 것.”
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비극사’에 나오는 이스라엘군의 명령이다. ‘청소하고, 파괴하고, 쫓아내고, 살해하라.’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저질러 온 일이다. 한때 홀로코스트 희생자였던 유대인은 이제 나크바의 가해자가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그들은 가장 오랫동안, 가장 끈질기게 종족 청소를 자행하는 야만의 상징이 되었다. 고통당하면서 고문 기술을 배운 셈이다.
“군인들은 아무도 그냥 봐주지 않지. 언제나 불러세우고, 심문하지. 어느 집을 가봐도 누군가 투옥되었거나, 부상당했거나, 죽은 사람이 있어. 뭐 이따위 어린 시절이 있지?”
‘팔레스타인’에서 미국 그래픽노블 작가 조 사코는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고통을 몇 줄로 압축했다.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군의 가자 공격은 하마스의 테러와 납치가 그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으나, 수십 년간 이 땅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테러와 학살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가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다. 고대부터 두 대륙을 오가는 상행이 이어지고 군대가 들고 나는 병목에 해당했다.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정착한 시기는 무려 5300년 전이다. 워낙 요지였기에 역사 내내 가자는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 제국과 오리엔트 제국이 팽창하고 충돌할 때마다 지배와 파괴, 복원과 번영을 반복했다.
약 3400년 전 이집트 제국을 무찌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땅에 자리 잡았다. 이들이 히브리 성서에 블레셋인이라고 기록된 사람들이다. 약 2750년 전, 가자는 아시리아 제국의 통치 아래 들어갔고, 페르시아 제국 아래에서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다. 약 2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될 때 철저히 파괴됐다가 베두인들 손에 복원된 후, 헬레니즘 학문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다. 번영하기 좋아서 번창했고, 먹이가 되기 쉬웠기에 파괴되는 비극은 로마 제국에서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기간에 수없이 반복됐다.
로마 제국 때 부흥해 무역 중심지로 6세기 동안 번영을 누렸으나, 637년 무슬림에 정복당해 이슬람 지역이 되면서 그 위세를 약간 잃었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상인으로 활동하는 등 상업 활동이 무척이나 활발했다. 페르시아 지리학자 이스타크리는 말했다. “가자엔 큰 시장이 있었기에 상인들이 그곳에서 부자가 되었다.”
1100년 십자군이 쳐들어와 점령하면서 일시 번영했으나, 1191년 살라딘에게 패할 때 성벽이 해체되는 굴곡을 겪었다. 맘루크 제국이 몽골 제국과 싸우고 몇 차례 내전을 거치는 동안 그 길목에 있었던 가자는 철저히 파괴됐다. 폐허가 된 항구와 건물 몇 채뿐이었다. 그러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치하에 들어가면서 가자는 기적적으로 부활해 대모스크가 복원되고, 목욕탕과 노점이 번성하는 황금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1838년 가자를 방문한 미국의 학자 에드워드 로빈슨은 예루살렘보다 이곳의 인구 밀도가 높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비극은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무찌르고 이 도시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은 후,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가장 극악한 식민 정책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행하면서 시작됐다. 중동에 영구적 백인 정착지를 마련하겠다는 제국주의적 기획과 2000년 전 떠났던 옛 조상 땅을 회복하겠다는 시온주의자의 망상이 결합해 주인 없는 땅에 유대 국가 창설을 약속한 벨푸어 선언이 그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주인 없는 땅은 없었다.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소수 유대인과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던 땅이 있었을 뿐이다. 영국이 밀어붙인 유대인 이주 정책과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차별적 억압 정책은 당연한 반발을 불렀다. 1929년 팔레스타인 폭동으로 가자지구의 유대인 지구가 파괴되고, 유대인 대부분은 이 도시를 떠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유럽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에 유대인들을 이주시켜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미국과 영국이 제공한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이용해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의 강제 추방과 학살을 거듭하면서 나크바가 일어났다. 홀로코스트에 비견되는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여덟 살 때 발표한 시에서 나크바로 집을 잃은 자기 가족의 처지를 절절히 호소했다. “너에겐 장난감이 있지만, 나에겐 장난감이 없어. 너에겐 집이 있지만, 나에겐 집이 없지. 너에겐 축하할 일이 있지만, 나에겐 축하할 일이 없어. 왜 우리는 함께 놀 수가 없는가?”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민족 시인으로 자라는 동안, 그에게 돌아온 것은 수시로 감옥에 끌려가고, 외출 금지를 당하는 등 탄압뿐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연인’에서 다르위시는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 유랑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노래한다. “나는 어제 항구에서 그대를 보았다/ 가족도 없이 먹을 것도 없이 떠도는 그대를/ 나는 고아들처럼 그대에게로 달려갔다./ 조상의 지혜를 물으려고/ 어찌하여 푸른 그 들판이/ 감옥으로, 유형지로, 항구로 변했는지”. 향수와 분노를 바탕에 깔고, 고난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강인한 의지를 표명하는 다르위시의 시는 지상에서 안식을 잃고 떠도는 모든 인간은 팔레스타인인임을 깨닫게 한다.
1948년 이집트가 가자를 관할하고, 학살을 피해 탈출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가자의 인구는 폭증하기 시작한다. 1967년 이스라엘의 기습 점령으로 ‘6일 전쟁’이 벌어지면서 이 지역의 운명은 비극의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스라엘은 강제 점령지 통치를 위해 군사 총독부를 창설하고, 아랍인들의 투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민간인에 대한 암살과 테러조차 서슴지 않고, 저항군 가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사막 수용소에 구금하고, 그 집을 통째로 불태웠다.
‘가시 선인장’에서 샤하르 칼리파는 그 참상을 고발했다. 산밑까지 뻗어 있던 올리브밭은 이스라엘이 불살라서 황무지가 됐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공장에 나가 굴욕적인 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막내아들 바실이 해방 투쟁에 연루되어 체포되자 누대를 내려오던 알카미르 집안의 아름다운 저택은 이스라엘 포격에 불타오른다. 야만적 연좌제와 지속적인 인종청소는 이스라엘 점령 정책의 핵심을 이룬다.
그에 따른 반발도 점차 거세졌다. 1987년 이스라엘에 대항해 팔레스타인 전체가 봉기한 제1차 인티파다가 벌어졌고, 2000년엔 제2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숱한 피를 흘린 결과, 2005년 이스라엘 점령군과 정착촌이 가자에서 철수했고, 2006년 무장단체 하마스가 선거를 통해 집권해 이 땅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봉쇄로 여기에 맞섰다. 그 결과, 가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이 되었다.
‘뜨거웠던 봄’에서 칼리파는 말한다. “긴 분리 장벽이 거리와 거리를 갈라놓고, 도시는 고립된 우리 수준이었다. 모든 도시는 경찰과 탱크에 포위당한 거대한 빈민가가 되었다. 도시 입구는 참호와 오물더미로 막혔다. 청년들은 목숨을 잃었고, 여자들은 새 생명을 낳았으며, 병자들은 숨을 거뒀다.”
공존과 평화를 원하면, 안전한 일상의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자지구에서는 어떤 일상도 불가능하다. 물의 95%가 식수가 아니고, 전기가 하루 4시간만 공급된다. 사회 기반 시설이 ‘테러리스트 인프라’가 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강제로 떠나게 하기 위해서다. 실업률이 45%이고, 아이 46%가 굶주림 탓에 빈혈에 시달리는데, 이스라엘은 교역도 못 하게 가로막는다.
팔레스타인 작가들 단편을 모은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지붕 없는 감옥’인 가자의 삶을 그려낸다. 사람들은 아이의 죽음을 차마 볼 수 없어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하고, 억양 탓에 살해당할 위험을 피하려 모어를 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처절하게 묻는다. “언제쯤 팔레스타인인이 사람으로 여겨질까? 인간으로? 민간인으로?”
희망 없는 삶이 한없이 지속된다면, 목숨 건 저항 말고 다른 길이 어디 있는가. ‘봉기’에서 프랑스 정치학자 레티시아 비타이으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이스라엘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자살 폭탄 테러의 유혹에 시달리는 ‘인티파타 세대’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가자에서 반복되는 탄압 및 저항과 전쟁은 이스라엘이 빚어낸 반인륜적 행위가 주로 그 원인을 제공했다.
다르위시는 말한다. “우리는 희망이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해방과 독립의 희망, 아이가 안전하게 학교에 가는 희망, 임신부가 군인들 앞에서 사산아를 낳지 않고 병원에서 살아있는 아이를 낳는 희망, 시인들이 피가 아니라 장미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희망, 이 땅이 사랑과 평화의 땅이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는 희망.” 팔레스타인에 이러한 희망을 돌려주는 것이 이 비극적 도시를 ‘샬롬과 살람의 땅’으로 되돌리는 출발점일 것이다.
출판평론가
■ 용어설명 - 정착민 식민주의
정착민 식민주의란, 외부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를 정복한 후 원주민을 철저히 배제하고, 그 땅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가장 극심한 형태의 식민주의를 말한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가 원주민을 추방하고 학살해 말살한 후 그 땅을 차지한 것이 그 선연한 예이다. 휴전을 거부하고 확전을 고집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등 극우 시온주의 세력이 천명해 온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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