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쿼츠, 애플워치… 물고 물리는 시계 신기술 역사

한겨레 2024. 10.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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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각국은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유동성을 퍼부었다.

애플워치 등장 전 시계산업은 고가의 기계식 시계와 중저가의 쿼츠 시계로 크게 양분돼 있었다.

애플워치 등장 이후 시계가 가진 '사치재'라는 특성과 '정확한 정보'라는 특성은 이제 한곳에 담을 수 없게 진화했다.

반면에 쿼츠 시계의 대표주자 격인 '파슬' '시티즌' 등은 애플워치 등장 이후 지지부진한 매출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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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1932년 의거 직전 교환했던 회중시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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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시계는 6원이지만 선생님 시계는 2원입니다. 저는 이제 필요 없으니 바꿉시다.”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전 김구 선생에게 남긴 말이다. 이 일화를 ‘숫자적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윤봉길 의사는 시계에 교환가치를 부여했다. 김구 선생에게 가격이 더 높은 시계를 건네며 유사시 군자금으로 활용하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 당시 시계는 현금만큼 환금성이 높은 시대였다. 스위스를 필두로 한 시계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였다. 어떤 이유였을까? ‘신기술’과 ‘사치’가 합쳐졌다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을 알리는 타종 소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아이폰’을 넘어선 신기술이었다.

이 신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시계 장인들은 며칠을 몰두해 태엽을 깎아 시계를 만들었다. 시계 자체만으로 이미 높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여기에 금붙이를 세공해 시계를 장식한다. 필수재는 아니지만 ‘필요재’에 ‘사치성’이 더해진 것이다. 따라서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자식 시계의 등장 ‘쿼츠 파동’

스위스 시계산업을 파멸로 이끈 것은 전자식 쿼츠 시계의 등장이었다. 이는 후에 ‘쿼츠 파동’이라 불린다. 쿼츠 시계는 시간 오차를 획기적으로 줄였고 편의성을 늘렸다. 쿼츠 이전 기계식 시계는 하루에 오차가 몇십 초가 났고, 매일 태엽을 감아주거나 계속 착용해야 했다.

쿼츠 시계는 하루가 아닌 1년의 오차를 수십 초로 줄였고 배터리의 장시간 사용 가능성을 보여줬다. 앞서 말한 ‘태엽시계 신기술’의 종말을 불렀다. 모두가 시간을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자 아이러니하게 사치재로서 시계의 가치가 떨어졌다. 이 시기에 수많은 시계 회사가 도산했고, 윤봉길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건넨 시계를 만든 회사인 ‘월쌈’이 도산한 것도 이때였다.

시계산업이 스멀스멀 다시 살아난 것은 1980년대였다. 스위스 시계업체들은 시계의 본 가치인 ‘시간’의 정확성을 포기하고 장신구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시계산업은 부활을 시작했다. 그 결과 시계산업은 크게 리치몬트그룹, 스와치그룹 등 그룹 브랜드와 롤렉스,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등 독립 브랜드로 구성된다. 특히 이들은 중국의 성장과 더불어 고성장을 기록했다. 시계 그룹의 리더 격인 리치몬트그룹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동안 2014년까지 주가가 거의 5배나 성장했다.

그러다 2014년 애플워치가 발표됐다. 시계 회사들에 다시 악몽이 됐을까? 스와치그룹 최고경영자(CEO)였던 닉 하이에크 회장은 2014년 “우리는 스마트워치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애플워치는 시계산업을 강타했다. 애플워치 등장 5년 만인 2019년 애플워치의 판매량은 3천만 개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스위스 시계 판매량 2천만 개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였다.

실제로 리치몬트그룹의 매출은 애플워치 등장 이후 제자리를 걸었다. 2014년 약 14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나 2018년까지도 제자리였다. 반면 애플워치의 매출은 매년 급속도로 성장해 5년 만에 리치몬트그룹의 매출을 따라잡았다. 시계 회사들의 주가는 제2차 ‘쿼츠 파동’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애플워치 등장 뒤 5년간 리치몬트그룹과 스와치그룹의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이 폭발한 시절에는 고가 시계 브랜드의 매출과 회사 주가가 폭등했으나 중국 경기 둔화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실적이 부진하다. 스위스 바젤의 시계·보석 상점에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모델이 진열돼 있다. REUTERS

코로나19로 인해 각국은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유동성을 퍼부었다. 쏟아진 돈은 시계 회사들에 우연치 않은 기회가 됐다. 어떤 방식이었든 불공평하게 편중된 자금이 각종 명품 구입으로 쏠렸다. 고가 시계에 이른바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했다. 롤렉스뿐 아니라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등 초고가 시계에도 프리미엄이 붙었다. 5천만원에 출시된 시계가 2차 시장에서는 1억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팔렸다.

고가 시계 브랜드를 소유한 리치몬트그룹, 스와치그룹 등의 매출은 급성장했다. 리치몬트그룹 매출은 애플워치 등장 이후 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다음 5년 동안 2배가 뛰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시기에 애플워치의 성장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3년 애플워치 매출액은 20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2배가 뛴 것이다.

매출을 뺏긴 것은 중저가 시계 브랜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쿼츠 파동’의 주역들이었다. 애플워치 등장 전 시계산업은 고가의 기계식 시계와 중저가의 쿼츠 시계로 크게 양분돼 있었다. 고가의 기계식 시계는 극적으로 기사회생했으나 중저가 브랜드는 이제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 애플워치 등장 이후 시계가 가진 ‘사치재’라는 특성과 ‘정확한 정보’라는 특성은 이제 한곳에 담을 수 없게 진화했다.

미래의 시계 산업

투자로서 시계산업을 살펴보면 코로나19 이후 고가 시계 브랜드를 소유한 기업들의 주가는 LVMH(루이뷔통모에에네시) 주가와 비슷하게 변화했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이 폭발한 시절에는 매출과 주가가 폭등했다. LVMH그룹과 리치몬트그룹 둘 다 매출이 거의 2배 성장했다. 주가도 같이 반응해 최고점 기준 리치몬트그룹은 약 4배, LVMH그룹은 약 3배 증가했다.

중국 경기 둔화로 주가가 하락하는 모습도 같다. 각국 은행들의 유동성 회수가 시작된 2022년 이후 중국발 사치품 수요가 급감하자 명품 브랜드의 매출과 주가가 급속하게 하락했다. 반면에 쿼츠 시계의 대표주자 격인 ‘파슬’ ‘시티즌’ 등은 애플워치 등장 이후 지지부진한 매출을 보여줬다. 이제는 시계산업을 오로지 사치재로서의 가치만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쪽으로 귀결되는 사례다.

재미있는 것은 LVMH그룹의 가장 약점은 잘 나가는 고가 시계 브랜드가 없다는 것이다. LVMH그룹에 투자한 뒤 리치몬트그룹이나 스와치그룹에 투자한다면 모든 사치품 산업에 투자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가올 금리 인하와 중국의 경기 회복 등을 예상해 LVMH그룹에 투자한다면 시계 그룹들도 같은 투자 범주에 들어갈 만하다. 하지만 예물 시계의 대명사인 롤렉스는 아쉽게도 투자할 길이 없다. 상장될 일 없는 가족회사이기 때문이다.

찬호 공인회계사 Sodo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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