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서 욕망으로… 노스탤지어의 변천사[북리뷰]

장상민 기자 2024. 10. 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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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지음│손성화 옮김│어크로스
17C 생긴 ‘귀향+고통’ 합성어
400년간의 연구·기사 등 수집
본래엔 파병군인의 ‘장애’ 취급
산업화 후 향수병 등으로 불려
브렉시트·MAGA 동력되기도
게티이미지뱅크

‘인생 책’ ‘인생 노래’와 같은 ‘인생 ○○’을 고를 때면 사람들은 ‘그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하곤 한다. 지나간 날의 달콤 쌉싸름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바로 노스탤지어다.

1688년 스위스의 의사 요하네스 호퍼에 의해 만들어진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귀향이라는 의미의 ‘노스토스(nostos)’와 고통을 뜻하는 ‘알고스(algos)’의 합성어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와 전투를 치르던 유럽 용병들을 괴롭히던 노스탤지어를 ‘장애’로 명명했다. 그러나 감정사학자인 저자는 노스탤지어라는 감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를 떠올리는 일에는 언제나 현재의 개인이 가진 가치와 윤리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기억의 재구성 과정은 ‘이미 일어난 일들에 감정을 채우고 금칠을 한 다음 장밋빛 조명을 한껏 비추는 것’이므로 필연적인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왜곡으로부터 흥미를 느낀 저자는 노스탤지어가 이름 붙여진 17세기부터 지금에 이르는 400년의 시간을 세밀한 조사를 통해 끈질기게 추적한다. 의사, 심리학자,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정치·문화 평론가들의 평론은 물론이고 각종 기사와 광고까지 방대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그는 노스탤지어가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인, 모순적 감정이며 여전히 경쟁적으로 해석돼야 할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노스탤지어가 감정의 하나로 이해될 뿐인 오늘날에는 그것이 장애로 명명됐다는 사실이 상당한 과장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노스탤지어는 심각하면 죽음에도 이를 수 있는 질병이었다. 당시에 노스탤지어는 주로 장소의 문제로 여겨졌다.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던 시골 마을을 떠나 주인집에 온 하인들, 따스한 안락함을 제공하는 고향을 떠난 군인들을 실의와 무기력에 빠뜨렸고 그들이 죽어갈 즈음에는 심박을 비롯한 건강 징후를 뚜렷이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저자는 심각한 노스탤지어가 사망원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사회는 노스탤지어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지 않았음을 짚는다. 오히려 파병 생활을 이어가는 애국심의 상징이요, 가족에 대한 헌신의 징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발전으로 대표되는 이후 산업화 시대는 대이동의 시대였다. 생계를 위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 중 하나였고,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신대륙으로 떠나는 일은 위대한 개척이었다. 그렇게 노스탤지어는 19세기 말에 이르러 보다 사소해진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떠난 이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로 여겨지며 익히 아는 ‘향수병’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노스탤지어는 나약함의 상징이요, 극복의 대상이 됐으며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유아적 엄살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부정적 성격이 부각된 것이긴 하나 이전처럼 질병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20세기 중반이 되자 노스탤지어를 의사로부터 넘겨받은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지금의 인식에 익숙한 감정으로 바꿔놓는다. 그들은 노스탤지어를 장소가 아닌 시대에 대한 동경으로 해석했다.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격변의 시기 속에서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였고 ‘친숙하고 단순한 시대’로부터 안정감을 찾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선호’의 대상이 된 노스탤지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각종 산업이었음을 짚는다. 1970, 1980년대는 가정용 조리도구부터 패션, 음악, 영화에 이르기까지 195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로 넘쳐났다. 앨빈 토플러는 ‘노스탤지어의 물결’이라는 시대 진단으로서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게 된 세계를 우려하기도 했다.

한편 저자는 21세기로 넘어오며 노스탤지어의 지배가 단순히 ‘복고’ 문화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가장 최근의 정치 사건인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슬로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사례로부터 과거의 황금기를 들춰내 권력을 차지하는 동력이 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심지어 사회학자 야니스 가브리엘의 말을 빌려 노스탤지어가 “인민의 최신 아편”이라며 비판적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노스탤지어를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시대의 결핍과 욕망이라면 사회 문제 해결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 놓는다. 책장을 덮으면 과거를 추억하는 감정에 대한 분석조차 400년간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해왔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그렇다면 꾸물거리며 자꾸 뒤돌아보는 사람도 반성의 시간을 거쳐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선명해진다. 456쪽, 2만2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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