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저마다 인생의 속도가 있다

이영관 기자 2024. 10. 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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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에 발을 올리자 차가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일반 도로였다면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한 소리였지만, 그곳에선 괜찮았다. 경기도 용인의 한 서킷(경주장). 시승 행사에 참여한 이들 중에 ‘베스트 드라이버’를 가리는 자리였다. 장애물을 피하며 100m 안팎의 짧은 코스를 빠르게 주파하는 것이 규칙. 출발 신호가 울리자,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차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속도 줄이고 내려주세요.” 무전기에서 진행자의 목소리가 나온 뒤에야 장애물을 건드렸다는 걸 알았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 결승선을 넘지 못한 채, 다른 이들의 주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완주하는 이들에겐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각자의 페이스로 가속과 감속을 했다는 것. 코너링과 장애물 구간에선 속도를 줄이고, 직선 구간에선 전속력으로 달렸다. 불행 중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다. 완주를 못한 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날 서킷에서 본 풍경을 주변에서 발견한다. 일단 힘껏 페달을 밟으며 내달리지만 속도를 언제 줄여야 하는지 모르는 이들. 그리고 인생이란 경주에서 멈춰선 채 낙담하는 이들. 두 상반된 풍경은 점점 짙어지면서, 사회 곳곳에 그늘을 만들고 있다.

최근 2주 연속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물 1위 오른 예능 ‘흑백요리사’는 ‘요리 계급 전쟁’이 모티브다. 이름이 알려진 요리사는 ‘백수저’, 덜 알려진 이들은 ‘흑수저’로 요리 대결에 참여한다. 백수저에게만 방송 초반 인센티브를 제공해, 두 계급 사이에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미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과열돼, 참가자가 동등한 조건에서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식상하게 됐다는 뜻일 테다. 동시에 경쟁에서 아예 발 빼는 이들도 늘고 있다. 20대와 30대에서 일하지 않고 구직도 하지 않는 이들을 뜻하는 ‘쉬었음’ 인구는 지난 8월 기준 약 75만명이었다. 역대 최고치다.

‘사교육 억제’ ‘청년 취업 장려’와 같은 정치권의 구호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과열된 경쟁을 식히고, 경쟁을 포기한 이들을 경주장으로 불러 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다.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놓쳐선 안 되는 것이 있다. 사람마다 인생의 속도는 다르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만들어 취업을 장려하는 것 못지않게, 청년들이 스스로 일하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단 뜻이다. 기자 주변에 회사를 관둔 청년들 중 상당수는 갈 길을 잃어 퇴사했다고 말한다. 큰 포부를 갖고 입사했지만 멘토를 만나지 못했고, 스스로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일자리 숫자보다 인생의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게 돕는 일일 테다.

“저기 퍼펙트 랩(한 바퀴)이 있어. 대부분은 존재도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해.” 영화 ‘포드 v 페라리’에서 자동차 엔지니어 켄 마일스는 자신의 주행 비결을 이렇게 표현한다. 실제 1966년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가 모터스포츠 대회 ‘르망 24시’에서 1위를 차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마일스가 포드에 1위를 안겨준 건, 갖은 외압에도 자신만의 완벽한 한 바퀴를 향해 속도를 조절한 덕분이다. 그의 입을 빌려 묻고 싶다. 당신의 퍼펙트 랩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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