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81] 허심탄회(虛心坦懷)의 의미
예전 외교부 근무 시절 일본 외교관들이 회담을 앞두고 비공식 만남을 제안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당시에는 허심탄회를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일본의 허심탄회는 한국과는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심탄회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는 일본에서도 오리무중이다. 특별히 중국 고전 등에 그 전거가 보이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허심(虛心)’은 노자(老子)의 무위(無爲) 사상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풀이된다. 도덕경의 ‘허기심 실기복(虛基心, 實基腹)’, 즉 성인(聖人)의 다스림이란 백성의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는 것이라는 구절에 허심의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바라는 바를 인위적으로 이루려는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는 것이 비움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평평할 탄(坦) + 속마음 회(懷)로 이루어진 ‘탄회’는 거리낌이 없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내심 노림수나 불순한 저의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탄회는 그러한 동요가 없는 평정(平靜)한 마음의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일본어 사전은 허심탄회의 뜻을 ‘마음속의 응어리나 고집을 내려놓은 채 순순히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로 풀이한다. ‘솔직함’ 또는 ‘털어놓음’보다 ‘내려놓음’ 또는 ‘받아들임’에 방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 당사자 간에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간에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면 애초부터 갈등이 생기지도 않았을 터이다. 그런 만큼 현실 세계에서는 ‘허심탄회한 대화 제의’가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동의하지 않는 데에 동의(agree to disagree)’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화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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