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의료계와 골든타임, 한계에 왔다
한의사협회는 사실 오래전부터 한의사 입학 정원을 활용해 의대 증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 매년 800여 명의 한의사가 배출되는데 그쪽 분야에선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해 초 한의대 입학 정원을 300명 줄이고, 줄인 한의사 규모만큼 의대 정원을 늘려 달라고 정부 측에 요구했다. 앞으로 의사 수를 늘릴 때 기존 한의대 입학 정원을 의대로 흡수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아 보여 기자도 이런 내용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본보 3월 21일자 A22면 참조).
최근 정치권과 정부 중심으로 의료인력 수급 추계·조정을 위한 논의기구, 의료 개혁 추진 등 전공의 이탈과 의대생 휴학 사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좀처럼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2025년 의대 정원 재조정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선 어떤 대책도 정부가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봐도 2025학년 의대 정원은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6개월 버티면 이긴다”고 언급한 게 정부 쪽 분위기를 반영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장기전을 통해 전공의나 의대생들이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최근 서울대 의대가 전국 의대 40곳 중 처음으로 의대생 휴학을 승인함에 따라 다른 대학에서도 휴학 승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휴학 승인 후유증이 점차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현 시점에서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이에 따른 집단 유급과 법적인 책임 소송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대 의대 학장이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하면서 정말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대 교육상 한 학기 휴학은 1년 휴학과 마찬가지인 셈이라 당장 내년 예과 1학년은 4500명이 아닌 7500명으로 늘어나는 상황이 현실화됐다.
교육부는 내년에 7500명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예과 1학년, 이들이 전문의가 되는 최소 10년 가까이를 보건복지부와 해결책을 고민하면서 풀어야 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는 시간이 지나면 필수·지방 의료 살리기와 의사 부족 문제 해결 등 의료 개혁 성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당장 내년에 늘어나는 엄청난 규모의 의대생들을 어떻게 양질의 교육을 할지에 대한 정부 대책은 없어 보인다. 의대 교육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면 오산이다. 단순히 주입식 교육으로 해결하면 부실한 의사를 양성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국민들이 입게 된다.
국내 의료를 걱정하는 한 원로 교수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토해야 한다”며 “이미 입시가 시작된 상황이긴 하지만 2000명 증원이란 엄청난 결정을 갑자기 발표해 놓고 조금도 규모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건 안 맞는 얘기”라고 했다.
환자와 의사들은 응급실도 그렇고 큰 병원 이용도 과거와는 확실하게 다르다고 말한다. 환자의 불편함이 극도에 달하고 있고, 이는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료계와 사태를 해결할 골든타임, 놓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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