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자의 작은 이야기]정뜨르 비행장과 알뜨르 비행장
하루에도 수백의 시조새들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바닥을 할퀴며 차오르고
찢어지는 굉음으로 바닥 짓누르며 내려앉는다
차오르고 내려앉을 때마다
뼈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빠직 빠직 빠지지지직
빠직 빠직 빠지지지직
시커먼 아스팔트 활주로 밑바닥
반백년 전
까닭도 모르게 생매장되면서 한 번 죽고
땅이 파헤쳐지면서 이래저래 헤갈라져 두 번 죽고
활주로가 뒤덮이면서 세 번 죽고
그 위를 공룡의 시조새가
발톱으로 할퀴고 지날 때마다 다시 죽고
그때마다 산산이 부서지는 뼈소리 들린다
빠직 빠직 빠지지지직
빠직 빠직 빠지지지직
정뜨르 비행장이 국제공항으로 변하고
하루에도 수만의 인파가 시조새를 타고 내리는 지금
‘저 시커먼 활주로 밑에 수백의 억울한 주검이 있다!’
‘저 주검을 이제는 살려내야 한다!’라고
외치는 사람 그 어디에도 없는데
샛노랗게 질려 파르르 떨고 있는 유채꽃 사월
활주로 밑 어둠에 갇혀
몸 뒤척일 때마다 들려오는 뼈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빠직 빠직 빠지지지직
빠직 빠직 빠지지지직
이따금 나를 태운 시조새
하늘과 땅으로 오르내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잠시 두 발 들어 올리는 것
눈 감고 창밖을 외면하는 것
-시, ‘정뜨르 비행장’, 김수열 시집 <바람의 목례>
나는 옛말이 좋다. 우리 동네 행정 주소인 보산원리나 용이 밭을 갈았다는 용경마을보다 사구실이란 옛 이름이 좋다. 용텀벙이라는 웅덩이 옆에서 사기를 구웠기에 그리 불렀겠다. 어른들은 아직도 함박골이라거나 쑥가말 같은 이름을 쓴다. 우리말 중에서도 제주도 지명은 더 아름답다. 무등이왓이나 너븐숭이 같은 지명을 처음 들었을 때 너른 품속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새별오름이라거나 쌀오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코가 절로 벌어졌다. 해거름에 쌀 씻는 아낙이 보이고 저녁밥 짓는 연기와 지슬(감자) 굽는 냄새가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듯했다.
모슬포의 섯알오름과 알뜨르는 서럽게 아름다웠다. 너른 밭에 무가 자라는 알뜨르의 ‘알’은 아래쪽이고, ‘드르’는 너른 들판이란다. 알뜨르 비행장은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모슬포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격납고가 아직도 19기나 있다. 가미카제 주격기를 위한 시설이었다. 애국기라 부른 이 제로센을 친일지주와 자본가들이 헌납했다. 알뜨르 비행장 옆엔 ‘섯알오름 학살터’가 있다. 이곳의 탄약고터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여름, 예비검속으로 절간 창고나 수협에 가둬둔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곳이다. 이른 새벽 영문도 모르고 트럭에 실려가던 사람들은 고무신을 길가에 몰래 던졌다. 길 위에 까만 고무신들을 따라 가족들이 도착했을 때 사람은 없고 담요와 베개 쌀 등이 타고 있었다.
제주국제공항이 된 정뜨르 비행장은 4·3 당시 500명 넘는 양민을 군경이 총살해 암매장한 곳이다. “까닭도 모르게 생매장되면서 한 번 죽”었다. “땅이 파헤쳐지면서 이래저래 헤갈라져 두 번 죽”었다. “활주로가 뒤덮이면서 세 번 죽”었다. 누가 무고한 사람들을 주륙(誅戮)하라 명령했는가. 국방부에서 게엄사령관을 통해 내려진 명령체계에서 누가 최초로 양민들을 주살하라 명했는가. 이승만이다. 그런 자를 선각자이자 국가영웅으로 기리고 추앙하는 말들을 날마다 목도하는 시대에 뼈가 된 그들은 네 번 죽는다. “어둠에 갇혀/ 몸 뒤척일 때마다 들려오는 뼈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린다”. 사지가 흩어져 아직도 저를 증거하지 못한 흰 뼈들의 소리. 사람과 마을만이 아니다. 미친 역사가 학살하고 불태운 것은. 바람과 바다와 흙과 더불어 살아온 숨통, 말도 끊어버렸다.
김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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