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좋은 죽음 나쁜 죽음, 끝나기에 소중한 삶

신명준 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2024. 10. 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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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병원에서 맞는 마지막, 가족들 ‘죽음 경험’과 격리돼
죽음을 금기시하는 문화 개선, 적절한 교육과 간접경험 필요
신명준 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대기획 ‘데쓰(Death·죽음)’를 본 적이 있는가? 중증 환자를 보다 보면 항상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보호자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이 있을까? 우리는 언제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까? 끝나지 않는 숙제를 가지고 있는 기분이다. 서랍 속에 넣어둔 밀린 숙제를 다시 꺼내서 나를 되돌아본다. 정답을 적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외면은 하지 않으려는 심정으로 말이다.

내가 처음 죽음을 접하게 된 것은 외할머니의 죽음이다. 항상 나를 귀여워해주던 외할머니의 죽음은 아주 어릴적 일이라 생생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접해보지 못 했던 사람들의 반응 등 단편적인 느낌만 남아있다. 외할머니를 묻기 위해 묘지로 갔었고, 거기서 무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흐느끼기 시작했고 나도 그냥 울음이 났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셨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어려서였을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그것이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 외할머니를 뵙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을 뿐.

의사가 된 이후 나는 다시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사망 선고를 하기 위해서 만난 환자들, 질병으로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환자들을 곁에서 보게 되었고 그들을 떠나보내는 보호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는 분, 장기간 만성 질환에 시달리다 돌아가시는 분, 모두 각자 사연이 있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공평해진다.

환자는 모두 평온을 찾아 이 세상을 떠났지만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얼마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의 부재는 아무리 무디어지려고 해도 무디어질 수 없을지 모른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큰 사건일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약속된 일이다. 그러니 미리 유한한 인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고, 죽음에 대한 교육이 다세대에 걸쳐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한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갑자기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 충격은 더 크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집에서 돌아가시는 문화가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죽음에 대해서 경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가족 중 누군가가 많이 아파서 죽음을 앞두고 있더라도 직접적인 죽음 경험과 격리될 수밖에 없다. 많은 중증 환자를 의료진이 담당하게 되면서, 가족의 죽음을 앞둔 사람을 대면하는 소수의 사람조차도 죽음을 온전하게 경험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는 것, 대부분의 가족이 찾아가지 못하는 공간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는 것, 이런 것이 죽음에 대한 오해와 공포를 더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암 수술을 받은 60대 후반의 환자가 70대가 되면서부터 외래진료에서 자기는 어떻게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가족에게 꺼내니 듣는 것도 싫어하고 대꾸도 안 한다고 했다. 암 완치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시간이 될 때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가족과 나눴다고 했다. 손자손녀에게도 시간이 지나면 만나지 못 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셨다고 했다. 보고 싶을 때에는 눈을 감거나, 같이 지낸 날들에 대한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기억할 수 있을거라는 말과 함께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많이 해두자고 했단다. 본인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니 매일 아침이 너무 즐거워졌다고 했다. 눈을 뜨면서 드는 생각이 오늘도 하루를 허락해주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어진 하루를 활기차게 생활하기 위해서 식사도 더 챙기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사시다 돌아가셨는데, 가족이 와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셔서 듣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었는데, 뵙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밥 한번 더 먹게 되고 사진 한 장 더 찍게 되더라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돌아가실 때 별로 섭섭하지가 않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좋은 죽음, 나쁜 죽음이 있겠는가? 죽음은 같은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서 남겨진 숙제가 가벼울 수는 있을 것 같다. 죽음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금기어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릴 적부터 모든 연령대에서 죽음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간접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임종이 예정되어 있는 환자들을 잠깐 면회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편안하게 며칠이라도 돌볼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끝이 있기에 지금이 소중한 것을 깨닫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내는 것에 최선을 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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