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후유증으로 병마”…국보법 희생자 방양균 민주시민장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빨갱이’ ‘간첩’ 등의 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악법 중 악법이다. 국가는 지난달 25일 별세한 방양균 선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간첩이기를 강요했다. 국가가 그를 간첩으로 지목한 이후 그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엉터리 소설’이 되었다.
고인은 1955년 2월10일 노령산맥 따라 확 트인 전남 함평군 엄다면에서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초∙중∙고를 가톨릭 계열 미션스쿨인 광주 살레시오 학교를 나왔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신학 공부를 하며 영성의 길을 찾았다. 국방의 의무를 마친 뒤에는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해 부상을 당했다. 이후 생업에 종사하다 1988년 4월 13대 총선 뒤 평민당 국회의원 서경원의 비서관이 되었다.
서 의원은 13대 국회 개원 3개월 뒤인 19 88년 8월 당국에 알리지 않고 방북했다. 가톨릭 농민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1985년 국외의 한 한국인 목사를 통해 방북 의사를 전한 서 의원은 1988년 북한으로부터 방북 허가를 받고 프라하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타고 그해 8월19일 북한 땅을 밟았다. 북한에서 8월21일까지 머물면서 김일성 등과 면담하고 베이징, 홍콩, 취리히,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9월5일 귀국했다. 서 의원은 귀국 뒤 김수환 추기경에게 방북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갈 때 방양균 비서관과 동행했다. 고인에 따르면 서 의원은 추기경 면담 자리에 자신을 동석시키지 않았으며 방북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1989년 6월에야 서 의원의 방북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서 의원이 1988년 11월 고인에게 “독일에서 이 선생을 만나 돈을 받아 오라”고 했을 때도 순수한 후원금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1989년 6월 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가 고인을 체포한 뒤 명동성당 수행은 간첩 혐의 빌미가 되었고 1988년 11월 옛 서독 출장은 간첩 혐의 확증이 되었다. 고인은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 형을 받고 1996년 7월9일까지 수형 생활을 했다.
저 억울함을 안고 어떻게 살았을까? 당시 초등 4학년 딸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우리 아빠를 무슨 죄로 이렇게 가두어 놓으셔야 합니까? (…) 아빠 없는 설움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라고 편지를 썼다. 그는 간첩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았다. 간첩은 죽기까지 간첩이고 죽어서도 간첩이라는 것이다.
고인은 출소 뒤 양심수 후원회와 고문피해자 모임 대표, 국제앰네스티 한국 36그룹 대표, 광주대 인권연구소 부소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1년 검찰 재수사로 서경원 사건이 ‘강압수사에 의한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고인의 재심 청구는 2016년 대법원에서 기각되었다. 2020년 다시 재판해달라며 재심을 청구한 고인은 대법 판결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고인은 약물에 의존해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병마와 싸우면서도 침을 배워 침술로 몸을 추슬렀다. 자연치유를 위해 약초를 캐기도 했고 고전음악도 즐겨 들었다. 15년 전부터는 필자와 함께 매년 설과 추석 명절 때 광주 기독교회협의회에서 장기수 선생님들과 만났다. 고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대인기피 증세가 있어 이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 했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늘 따듯했다. 코로나 감염병이 끝날 무렵 곡성 기차마을을 함께 찾았을 때 소년 같은 고인의 해맑은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달 26일 방양균 선생 추모의 밤에 서경원 전 의원은 유가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는 “제가 잘못했던 잡음들, 트라우마들은 깨끗이 씻어 주시고”라고 용서를 구한 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추모곡으로 ‘부용산’을 불렀다. 고인 비석에는 ‘국가보안법 희생자’, ‘법치와 인권 양 날개로 날고 싶다’는 글이 적혀 있다.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 내는 야만의 국가보안법은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방양군 선생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한다.
장헌권/목사·국가보안법 희생자 방양균 선생 민주시민장 공동장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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