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 붙는 이사 충실의무 확대 논란… `우회로` 등장

신하연 2024. 10. 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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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 전문가 의견은?
법무부 관련법 개정 지지부진
금융위, 자본시장법 개정 대안
해외투자자 등 상법 개정 지지

야당과 해외 투자자 등이 밀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일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다. 기업은 경영활동 저해를 이유로 상법 개정을 강력 반대하고 있다. 반면 상당수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일반주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법을 개정하자는 기존 주장 외에 자본시장법 개정이나 상장회사 지배구조 특례법 제정을 통한 '우회로'가 제시돼 주목된다. 상법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상법 개정에 보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금융위원회 소관인 자본시장법 개정이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타임스는 관련 전문가인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 이상복 서강대 로스쿨 교수 등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법 체계상 상법 개정 전제돼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찬성하는 입장 중에서도 상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법 체계성'을 이유로 들었다. 기본법 성격을 띄는 상법을 개정하는 것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자 원칙에 맞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이상복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에 대해 "판례에서 대주주와 일반주주가 동일시 됐다면 상법 개정이 필요치 않았겠지만, 한국에서는 지배주주들이 회사와 본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다만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이사 충실의무 확대에 대해선 보수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법원이 기업의 선관의무와 이사충실의무를 판단하는 데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법 체계상 자본시장법 개정보다는 상법 개정이 맞다"며 "이사의 선관의무나 충실의무 모두 상장회사뿐 아니라 주식회사 전부에 적용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3.30. 선고 2019다280481 판결)에서도 '개별 계열회사의 이사는 기업집단이나 다른 계열회사와 관련된 직무를 수행할 때에도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부담한다'는 판례가 나오며 처음으로 기업의 선관주의 의무와 충실의무를 대등하게 적용한 만큼, 법원의 시선도 바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는 기업에서 주장하는 경영 위축 우려에 대해선 "이사 충실의무가 확대되더라도 결국 법원에서는 개별적 사건을 놓고 여러 제반사정을 참작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기업 경영활동 위축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지나친 기우"라면서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라는 조문만 상법에 포함하더라도 법 준수 의무 내지는 의식이 생기기 때문에 일반주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 교수 역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상장회사에만 적용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면서 상법 개정 의견을 지지했다. 다만 상장회사는 투자자 수가 많고 보호 필요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자본시장법 개정을 '차선'으로 꼽았다.

상장회사 특례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상법에도 자본시장법에도 들어가 있는 상장회사 관련 조항을 특례로 새로 떼어 만드는 것은, 취지 자체는 이해하지만 입법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 교수도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법원의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표했다. 이 과정에서 상법상 이사 충실의무에 포함될 새 문구 역시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와 주주를 완전히 동일하게 보는 충실의무는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 소송에서 충실의무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법적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상법 내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한다' '특정 주주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문을 포함하는 것이 '충실의무'보다는 뚜렷한 조항이고 주주를 보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장회사 이슈가 중점…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자본시장법 개정이나 상장회사 특례법 제정을 통해 우회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상훈 교수는 "한국에서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는 결국 재벌 총수의 '이해상충 방지법' 내지 '동상이몽 금지법'이며, 회사를 간판으로 내세워 일반주주의 몫을 빼앗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요지"라고 주장했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모두의 부를 증진시키는 행위라면 이는 (기업들이 주장하는) 경영판단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상장회사와 상장회사는 생리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상장·비상장 구별없는 상법보다는 주주간 조율비용이 압도적으로 큰 상장회사만이라도 적용될 수 있도록 자본시장법, 또는 상장회사 특례법에 규정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며 "주식시장과 상장법인의 인수·합병(M&A) 등 일반주주 침해 가능 영역을 직접 관장하는 자본시장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할 경우, 제도 운용상의 시너지가 높아지고 자본시장을 관장하는 당국에게 법집행 근거가 생긴다는 점도 실무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우진 교수도 "상장회사 이슈인 만큼, 자본시장법 개정 또는 상장회사 특례법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는 데 동의했다.

다만, 법 조항에 회사와 주주가 병렬적으로 놓이는 구조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형식 논란 때문에 (해당 법안이) 본론까지 못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반적 M&A나 기업활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적, 또는 선언적으로 법 조항을 다듬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또 "대신 상속제 감면 등 기업 입장에서의 유인책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면서 "주주도 좋고 지배주주도 좋은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야당에서는 최근 관련 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이사 충실의무 관련해서는 올 하반기 들어서만 김현정·박상혁·민병덕·유동수·김남근 의원 등이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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