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고발’ 누가 시켰나? [세상읽기]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유튜브 언론’이 정가를 흔들고 있다. 뉴스토마토, 뉴스타파, 서울의소리 등은 기성 언론이 무색하게 치밀한 기획과 기동력 있는 취재로 세상을 흔들 만한 보도를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서울대 이준웅 교수는 갑자기 오래된 허위가 폭로되고 비판적 보도가 쏟아지는 순간을 ‘머로 순간’이라고 소개하고 현재 언론에 바로 ‘머로 순간’이 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마도 우리에게 그 순간은 기성 신문과 방송이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서 먼저 달려오고 있는 듯싶다. 그저 몇몇 평론가들의 말장난으로 확증편향을 부추겨가며 돈벌이나 한다고 욕먹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유튜브가 고구마 100개는 삶아 먹은 듯 목이 콱 막혀버린 기성 언론에 비해 취재력에서도 앞서가는 것 같아서 새삼 그 진화의 속도에 놀라게 된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유튜브 언론의 폭로 속에서도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전 대통령실 시민소통비서관 직무대리 김대남의 녹취 보도이다. 해당 녹취는 지금은 금융기관 감사로 억대 연봉을 받는 김대남이 김건희 여사의 총선 개입 와중에 자신이 공천에서 밀려났다는 식의 넋두리를 담고 있다. 김 전 비서관 직무대리가 서울의소리 기자에게 김 여사 총선 개입의 정황을 밝히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더 귀가 쫑긋하게 들렸던 얘기는 바로 언론사에 대한 고발을 본인이 보수단체를 통해 사주했다고 고백한 부분이다.
현 정부 들어서 있었던 언론에 대한 수많은 고소·고발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거 다 내가 한 거야”라는 말 뒤에 이어진 어색한 웃음은 그 모든 게 공작이었음을 암시하고, 뒤이어 정작 자신이 고발 사주로 괴롭혔던 서울의소리에 이번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공격을 부탁하는 장면은 마치 ‘알잖아, 이 바닥이 그래’라는 듯 다시 모든 게 공작일 가능성을 환기해주었다.
그동안 언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2022년 한겨레가 김건희 여사의 관저 결정 개입 의혹을 보도하여 고발된 것을 시작으로, ‘바이든-날리면’ 보도로 문화방송(MBC) 사장 등이 고발되고, 한국일보와 뉴스토마토는 관저 이전과 천공 관련 보도로, 한국방송(KBS)은 이전 정부에서 있었던 검·언 유착 의혹 보도로, 그리고 뉴스타파는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 보도를 이유로 고소·고발되거나 수사를 받는 등 끊임없이 언론에 대한 압박이 이어졌다.
고소·고발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직접 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폭로된 바와 같이 생소한 보수 ‘시민단체’들도 한몫을 담당했다. 이는 곧바로 검찰 수사로 이어지고 여지없이 언론사와 기자 개인에 대한 시끌벅적한 압수수색이 마치 준비된 각본처럼 뒤따랐다.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한 문화방송 기자,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가 제기된 뉴스타파와 뉴스버스, 해당 언론사 대표들과 소속 기자들, 그리고 강진구 기자, 허재현 기자, 봉지욱 기자 등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압수수색을 당하였다.
이 많은 고소·고발과 압수수색들은 현 정부가 어떤 언론관을 가졌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과연 김대남의 고발 사주는 현 정부의 이런 언론관과 무관한 것일까?
올해 국군의 날 행사에서는 마침내 대통령이 ‘열중쉬어’ 구령에 성공한 모양이다. 그것도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는 이 정부에서는 잘했다고 축하를 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그것보다도 이 정부가 유독 능력을 잘 발휘하는 일을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언론을 ‘열중쉬게’ 하는 것일 것이다.
수많은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이 그랬던 것처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친인척까지 동원해서 방송사들에 대한 심의 민원을 제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방심위는 ‘민원 사주 의혹’에도 굴하지 않고 방송사에 대한 제재를 무더기로 쏟아냈다. 또한 21대 총선에서 단 2건의 법정제재 결정만 있었던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이번에 치러진 22대 총선에서는 무려 30건의 법정제재를 결정한 바 있다.
수많은 고소·고발, 압수수색, 법정제재 등 이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3종 세트가 의도하고 있던 바는 간명하다. 정부가 무엇을 하든지 언론은 그저 ‘열중쉬어’ 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도 공작도 ‘머로 순간’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 역사는 이미 언론의 섭리가 그러함을 여러번 반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또 시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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