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없어야 할 곳에 있는 직접선거
교육감 선거 유권자들, 공약보다 진영 따져
후보들 더욱 정치적으로 돼 편갈라 싸워
비교육적이고 예산 낭비 직선제 언제까지…
그러나 이러한 직접선거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프랑스에서는 1789년 대혁명 이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와 평등이 강조되었지만 이는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이념이었다. 여성들의 정치적 참여는 억제되었다. 프랑스 여성들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150여 년에 달하는 끈질긴 투쟁으로 마침내 1945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우리는 1972년 유신 이후 대통령을 소위 체육관에서 시행되는 간접선거로 선출했고, 이는 오로지 독재 강화를 위한 방편이었기에 국민적 저항은 대단했다. 그후 1981년 2월에도 간접선거를 통해 선거인단 5000여 명 중 90% 지지를 얻은 전두환 후보가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가 권력에 오르는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민주적이었기에, 우리에게 간접선거란 민주주의에서 크게 벗어난 그릇된 제도로 각인되고 말았다.
그리고 1987년에는 6·29선언으로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마치 민주주의를 모두 이룬 것 같은 큰 기쁨이었다. 당연히 사회의 크고 작은 다른 조직들도 이를 따랐고, 이렇게 해서 가장 먼저 직선제가 시행된 곳은 국공립 대학들이었다. 대학의 제일 중요한 의사결정은 물론 총학장 선출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 교수 모두가 한 표씩 행사하는 직선이 과연 합리적일까? 대학에는 포퓰리즘과 집단 이기주의가 피해 갈까? 대학은 학문적 능력이 존중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불평등하며 경쟁적인 조직이 되어야 더욱 발전할 수 있다. 프로야구나 축구 팀 선수들이 모두 한 표씩 행사하면서 자기들 안에서 감독을 선출하면 팀 경쟁력이 어떻게 될까? 직선제는 대학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아쉽게도 이런 제도를 지난 40년 가까이 시행하고 있다.
교육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또 다른 직접선거는 교육감 선출인데, 이는 그야말로 비교육적 행사인 듯싶다. 교육감 직선에는 사실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즉, 우리 사회에서는 자녀가 대학입시를 마치면 학부모들은 교육에 급격히 무관심해진다는 사실이다. 아쉽고 아쉬운 일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감 선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초중등 학생들의 학부모로 거의 한정되며 그 수는 750만 명 내외다. 이는 총유권자 4400만 명의 20%에도 훨씬 못 미치는데, 실제로 교육감 선거가 단독으로 치러질 때 투표율은 겨우 15∼20%였다. 이를 높이기 위해 교육감과 시도지사 선거를 같은 날 실시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교육감은 투표지를 받았기에 찍을 따름이다. 이렇게 절대 다수가 관심 없는 직선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면 안 된다는 논리로 교육감 후보에 대한 정당 추천은 제외되었지만, 이는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만들었다. 모든 투표가 정치행위인 우리 사회에서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정치적 성향에만 관심을 둔다. 교육감 후보들이 내세우는 교육 관련 공약을 보고 투표장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수와 진보라는 간판만을 보고 찍으니 후보들은 더욱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선출된 교육감들에게 우리는 지난해 100조 원에 가까운 세금을 맡겨 운용했다.
2018년에 인천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박융수 교수가 중도 사퇴한 후 저술한 ‘교육감 선거―교육이 망가지는 이유’에는 선거판의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책의 말미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교육감 선거는 명백한 해악이다.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역사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앞길을 막는 가장 비교육적이며 교육 예산을 낭비하고 사람들을 편 갈라 싸우게 하는 몹시 나쁜 선거다.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에 숨통이 튼다.” 이런 절규에도 불구하고 왜 교육감 직선제가 계속되고 있을까? 우리 스스로가 심각하게 돌아볼 일이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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