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이시바 日총리가 인터뷰서 강조한 말은 ‘용기’

박형준 산업1부장 2024. 10. 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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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군대', '해부 북한 리스크', '일미 동맹', '전쟁론'. 집무실 한쪽 벽면은 온통 책으로 차 있었다.

하지만 차기 총리 선호도 1, 2위에 꾸준히 올랐던 이시바 의원은 본보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동일한 자민당 의원을 각료 때와 의원 때 각각 인터뷰했는데, 한국에 대한 발언이 180도 달라 놀랐던 적도 있다.

일본의 안보 강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등의 주장은 한국인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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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산업1부장
‘한국의 군대’, ‘해부 북한 리스크’, ‘일미 동맹’, ‘전쟁론’…. 집무실 한쪽 벽면은 온통 책으로 차 있었다. 경제, 국제관계, 일본사 등 다양했지만 안보 관련 책이 가장 많았다. 다른 쪽 벽면엔 모형 군함이 전시돼 있었다. 일본의 새 총리로 1일 선출된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의원의 도쿄 중의원 회관 집무실 모습은 이랬다.

도쿄특파원 시절 그와 두 차례(2020년 1월, 2021년 11월) 인터뷰를 했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을 때여서 일본 정부와 정치권 인사 대부분은 한국 특파원을 만나길 거부했다. 하지만 차기 총리 선호도 1, 2위에 꾸준히 올랐던 이시바 의원은 본보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내심 놀랐다.

“총리가 되면 한국 역사부터 공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더욱 놀랐다. 그는 과거사에 대해 무척 전향적이었다. 인터뷰 내내 한국을 배려하는 단어를 사용한 점도 인상 깊었다. 신문 지면에 압축해 게재했던 문답 한 토막을 소개한다.

질문: 징용, 수출 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를 놓고 한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총리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답변: 한국의 역사부터 깊이 공부한 뒤 협상에 나서겠다.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그를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의 역사도 공부해야 하지만, 그 이전도 중요하다. 과거 일본은 한국과 북한으로 나눠지기 전이었던 조선과 유일하게 국교를 맺었던 때도 있었다. 일본은 그런 조선을 통해 여러 문물을 배웠다. 한국의 긴 역사, 찬란한 문화 등을 공부한 다음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상식적인 답’이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이시바 의원이 속한 자민당은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 정당이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일본 패전일(8월 15일)에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 그걸 애국이라고 믿기에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이시바 의원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도 부정적이고, 실제 참배하지도 않았다. 그의 인터뷰 발언은 자민당 의원으로선 매우 이례적이다.

그런 그가 이제 일본의 총리가 됐다. 다만 앞으로의 행보는 인터뷰 때와 좀 달라질 수도 있다. 의원은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지만, 총리와 각료 등 정부 대표는 철저하게 일본의 이익, 정부의 방침과 결을 맞출 수밖에 없다. 동일한 자민당 의원을 각료 때와 의원 때 각각 인터뷰했는데, 한국에 대한 발언이 180도 달라 놀랐던 적도 있다. 게다가 방위상 등 방위 정무직을 3번이나 지낸 이시바 총리는 안보 측면에서는 매파에 가깝다. 일본의 안보 강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등의 주장은 한국인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준다.

“용기 있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앞으로 이시바 총리가 비어 있는 물잔의 절반을 채우려 할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인터뷰 때 “한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면 우익들이 크게 반발한다. 마음속 이야기를 모두 꺼내지 못하는 걸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서도 한일 양측에 용기를 낼 것을 당부했다.

“일본은 과거 대한제국 궁전이 있는 곳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이런 말을 하면 일본 국내에서 강한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진심으로 양국이 양호한 관계가 되는 게 지역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용기 있게 말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 일본에도, 한국에도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일본은 한국, 중국으로부터 지적받아 일본의 전쟁 책임을 자각하는 게 아니라, 일본인이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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