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종교계 차별금지법 언급에 ‘후퇴된 답변’ 논란
“민주당이 민주적, 진보적 가치 대행 못해”
“시대에 안 맞고 뒤떨어진 생각” 비판 제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차별금지법 처리와 관련해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처리와 민생 문제를 분리한 것으로, 진보 가치를 표방해온 정당에서 소수자 혐오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장종현 한국교회총연합 회장 등 종교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장의 엄청난, 시급한 일이냐는 부분에서 고려할 것도 있어 충분히 논의하고 사회적 대화나 타협이 성숙된 다음에 논의해도 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차별금지법 논의가 우선과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 회장은 “기도를 한 번 해달라”는 이 대표 요청에 기도를 이어가던 과정에서 “모든 동성애 문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하나님 종교를 떠나서 아버지 생애를 걸고 이것은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장 회장은 “야당이라도 의원 수가 많으니 통과되고 안 되고 좌우가 있을 것 아닌가. 대표, 원내대표, 김민석 의원이 이것만큼은 막아줘야 한다”며 “대표님이 우리 민족을 위해 의료 사태나 동성애나 저출산 문제를 앞장서서 해나가면 국민이 세 가지는 다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지금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하고, 정치의 근본이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영혼의 양식을 풍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데,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데 지금은 어려워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동성애 합법화’ 문제, 차별금지법 문제는 사회갈등의 한 중요한 축이어서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정책이란 것은 판단과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 어느 한쪽은 옳고 다른 쪽은 틀리고 이런 건 아니고,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대선후보 때보다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2021년 11월29일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동성애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고, 성적 취향으로 차별해선 안 된다”며 “차별금지법은 필요하고, 입법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재화·용역의 이용과 공급, 행정서비스 제공과 이용 등 4개 영역에서 성별·장애·인종·학력·성적 지향·고용 형태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민생’과 분리될 수 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차별금지법은 다른 차원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시대에 적합하지 않고 뒤떨어진 생각”이라며 “누군가는 차별로 인해 취업, 가족 구성 등 먹고사는 문제가 막힌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이 (보호 대상이) 아니다. 찬성 여론이 몇년 사이 훨씬 높아진 경향을 보이는 등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라며 “민주주의와 진보를 지향한다는 정당의 대표가 이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민주당이 민주적 지향, 진보적 가치를 충분히 대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이후 입법 시도가 이어졌지만 종교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21대 국회에서 4건(이상민·박주민·권인숙·장혜영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됐으나 모두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단계에서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인권위는 지난 2020년 평등법 시안을 발표하는 등 국회에 법 제정을 촉구해왔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22대 국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당 지도부 차원의 움직임은 없다.
한편 이날 저출생 해법을 언급한 대목에서 개발도상국을 비하하는 발언도 나왔다. 장 회장은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법제도 도입을 주문하며 “15년, 30년, 40년 후면 다 천국 가고 없을 텐데 사람이 없으면 이민받아야 하지 않나”라며 “아프리카 사람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 민족이 섞어서 살게 된다고 할 때 우리나라 문화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원 게시판 논란, 한동훈 침묵의 의미는?…커지는 가족 연루 의심과 해명 요구
- 공무원은 이틀 전 미리 알았다…선착순 제주 청년 ‘4만원 문화포인트’ 쓸어가
- 유아인 “재판 중 부친상, 이보다 더 큰 벌 없다” 선처 호소
- [단독]명태균 “준석이 사무실 기어 올라가…” 김영선 최고위원 청탁 정황
- 산양유 ‘100%’ 라더니 실제로는 1.5%···가짜 분말 18억어치 판 간 큰 일당
- 김기현, ‘당원게시판’ 논란에 “한동훈 가족이 썼는지만 밝히면 될 일”
- [속보]‘만취 운전’ 문다혜 도로교통법 위반 검찰 송치
-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성남 땅 ‘차명투자’ 27억원 과징금 대법서 확정
- 창원시 공무원 ‘도시계획 간담회’ 보고서에 ‘명태균’ 이름 있었다
- “한강 프러포즈는 여기서”…입소문 타고 3년 만에 방문객 10배 뛴 이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