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밸류업지수 투자?…“차리리 행동주의펀드에 맡겨라”
지난 6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내부적으로 기금운용전략을 검토한 결과 국내주식에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을 냈다는 한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국내 주식이 해외 주식이나 채권 등에 비해 수익률은 낮고 변동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딱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국내주식시장의 좋지 않은 성적을 잘 안다. 2021년~2023년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을 보면 국내주식은 0.21%, 해외주식 11.96%, 해외채권은 3.47%다. 또 국내주식 비중 축소는 이미 추세였다. 국민연금 투자에서 국내주식의 비중은 2013년 20.0%, 2018년 18.7%, 2023년 15.9%로 꾸준히 감소해왔다.
오히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국내주식시장에서 밸류업이 이슈가 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어떤 정책을 내놓을 것인가”였다.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기금고갈을 약 6년 늦출 수 있다는 추정이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완전 탈조선”을 통해 수익률을 올릴 것이 아니라면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주식 운용수익률 제고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금석이 지난 9월12일 금융감독원·국민연금·한국거래소가 공동주최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이었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직접 출전했기 때문이다. 결론은 실망이었다. 국민연금은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정책이 없어 보였다. 반은 정부 탓, 반은 국민연금 탓이다.
밸류업지수 추종 투자가 높은 수익률 가져올까
발언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김 이사장은 한국거래소에서 발표한 밸류업지수가 국민연금기금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차원에서 국민연금을 밸류업 정책 안으로 끌어들인 이는 이복현 금감원장이었고 그는 이날 토론회에서 “일본 공적연금(GPIF)의 자국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확대가 시장의 저평가를 해소하고 일본 밸류업 정책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시장 참여자들의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에 국내주식 투자확대를 요구한 셈이다. 내가 느끼기에 정권 실세에게 투자확대요구를 받은 거 치고는 국민연금 답변이 상당히 애매했는데 실제로 최근 발표한 밸류업지수를 보니 그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코리아 밸류업지수는 시총, 수익성, 주주환원, 주가순자산비율(PBR), 자본효율성(ROE) 등을 기준으로 100종목으로 구성됐다. 주가순자산비율과 자본효율성이 높은 종목이 포함되니 ‘명품지수’다. 실제로 자본효율성은 15.6%, 주가순자산비율은 2.6으로 코스피 200의 9.3%, 2.0보다 각각 높다. 명품지수를 만든 거래소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지수를 우량기업 위주로 편성하면 향후 수익률이 걱정이고 저평가 기업 비중을 늘리면 지수 신뢰도가 문제다. 둘 사이에서 거래소는 일단 명품지수를 선택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면 질문은 국내주식운용수익률을 높여야하는 국민연금한테 도대체 뭘 하라는 것인가? 만약 국민연금이 밸류업지수를 활용한다면 벤치마크로 쓰거나 밸류업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를 할 거 같다. 거래소는 과거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밸류업지수의 수익률이 기존 시장대표지수보다 양호했다고 말하지만 이건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아마 거래소도 미래는 자신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코리아밸류업지수가 벤치마크한 일본 JPX프라임150지수는 닛케이지수보다도 성과가 좋지 못하다.
그리고 여러 실증분석은 명품지수(우량종목을 모은 지수)의 수익률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연금고갈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이런 위험을 떠안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자꾸 밸류업지수 포함 종목에 대한 단기수급(기대)에 국민연금이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밸류업지수 띄우기, 주가 단기부양에 동참하라는 것인데 걱정스럽다.
좀더 적극적인 주주 행동 필요
둘째, 김 이사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현재 기금운용본부 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기업 구조개선 자문위원회 및 3개 분과를 신설, 기금운용 전반에 걸쳐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위원회 논의 결과가 나오면 운용 전반에 대해 적절히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이동섭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장은 수탁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투자기업과의 대화, 의결권 행사 등 주주관여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다만 의결권과 관련해 기업의 공시가 부족한 점, 주주총회 일정이 특정 기간에 몰려 검토가 어려운 점 등이 있어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도 했다. 이것은 아마 이 금감원장의 “자본시장의 투자 저변이 확대되기 위해선 장기투자 주체로서 연기금과 운용사의 책임 있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발언에 대한 화답의 성격일 것인데 문제가 심각하다.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핵심원인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모호한 자세뿐 아니라, 국민연금의 책임투자에 대한 고민이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라는 가장 수동적인 방식에 갇혀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줬기 때문이다.
주주로서의 권리행사는 의결권행사 외에 기업과의 공개대화, 주주제안, 대표소송 등 방식이 다양하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소극적 행동만 해왔다. 국민연금이 시장 임팩트가 강한 공개적 주주관여활동을 한 것으로 확인되는 회사는 2015년 이후 총 6개(남양유업, 현대그린푸드, 남선알미늄, 대한항공, 한진칼, KCC글라스)뿐이다.
주주권 행사의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이 대표소송인데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제기한 대표소송은 한 건도 없다. 2018년부터 국민연금 내에 주주대표소송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이다. 이는 기금운용의 수익률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국민연금의 입장과도 모순된다. 시장수익을 뛰어넘는 초과수익을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주총회에서 적당히 반대표 던지고 지배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에 대해 적당히 투자비중 줄이는 수동적 전략으로만 초과수익이 얻어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고갈이 걱정이라면 국민연금 수뇌부도 더 절실해져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에 운용 위탁할 필요
국내 주식시장의 진정한 활성화를 위해 국민연금에 몇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모호한 책임투자를 지향하는 운용사 말고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하는 행동주의 펀드에 위탁하자.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수익률을 견인할 텐데 현재 국민연금은 적극적 활동을 위한 내부절차가 복잡하다. 이런 한계는 극복이 쉽지 않을 테니 현재의 위탁제도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또 그나마 하고 있는 의결권 행사도 보수적이니 더욱 행동주의 펀드에 위탁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이에스지(ESG) 주주제안에 대한 해외 의결권 행사내역을 해외 주요연기금인 GPFG(노르웨이 정부연금기금), ABP(네덜란드 공무원·교원 연금), CalPERS(미국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CPP(캐나다 국민연금), CalSTRS(캘리포니아 교직원 연금), AP1(스웨덴 연금)과 비교해보면 찬성률이 49.8%로 7개 중 6위다. 이에스지 경영을 위한 전향적 주주제안에 오히려 반대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의결권 가이드라인 제정을 서두르기 바란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의결권 행사 세부기준에는 환경 문제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 의결권을 어떻게 행사할지 판단 기준조차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에너지 위기 때문에 ‘반(anti)이에스지’가 등장했으나 지속가능성장이라는 흐름을 꺾지는 못했다. 다만 친환경 전환의 방법과 속도 조절이 이슈일 것이다.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이 국제자본시장에서 ‘반(anti)환경’이라는 평판을 쌓아 가면 안 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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