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로드쇼-영국]④ ‘까다로운’ 英 수출길 개척하는 청년들 “바이어들 계속 문 두드려, 한곳만 성사돼도 큰 성공”
영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전 세계 6위인 경제 대국이지만, 한국 농식품 기업 입장에서는 ‘불모지’ 같은 곳이었다. 비건·할랄 등 건강을 우선시하는 ‘라이프 스타일’, 유럽에서 생산한 재료가 아니라면 쉽게 통관이 허용되지 않는 BTOM(Border Target Operating Model) 등 ‘비관세 장벽’, 친환경 포장재 사용을 중시하는 ‘인식’까지. 영국은 외국 ‘먹거리’가 소비자들을 충족시키기에 ‘까다롭디까다로운’ 시장으로 정평 나 있다.
그런 영국 시장에서 최근 들어 한국 농식품이 꽤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6년 전인 2018년 한해 대(對)영국 농식품 수출액은 6200만달러에 그쳤지만 곧 ‘1억달러’(지난해 8500만달러) 달성을 바라보고 있고, 올해 들어서도 전년 대비 50% 가까운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식품이 수출되는 국가 중 네 번째로 수출 증가 폭이 큰 ‘유망 시장’인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저절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특히 20대의 청년해외개척단(AFLO) 단원 4명 그리고 30대 초반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영국사무소장 등 단 다섯명으로만 이뤄진 aT 영국사무소 직원들이 의기투합해 꾸준히 길을 뚫어온 노력이 한 몫을 했다.
AFLO는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 다변화를 위해 청년들을 해외에 파견해 신흥시장을 개척하는 aT의 사업으로, 2017년부터 지금껏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월 24일부터 9월 20일까지 석달간의 활동을 마친 영국 파견 21기 AFLO 단원들을 지난달 10~1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이 처음 ‘영국’이란 국가를 지원한 것은 ‘프리미어리그가 좋아서’, ‘뮤지컬을 사랑해서’, ‘해리포터 팬이라서’와 같이 다소 단순한 것이었지만, 실제 이곳에서 해낸 업무들은 모두 막중한 것들이었다. 신선아(24·국민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영어학과)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요약해 말했다.
신씨는 “한국 식품업체와 이를 수입하려는 영국 현지 바이어를 연결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우리의 업무”라며 “의욕 있게 수십통의 이메일이나 전화를 돌리지만, 상대방 쪽에서 반응이 안 오면 어쩔 수 없다. 10통의 메일을 보내면 2~3통 답장이 올까 말까고, 그중에서 지속해 연락과 미팅을 이어가야만 (성사의) 가능성이 겨우 생긴다”고 했다. 그는 “내가 아무리 영업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업이 결국 ‘관심 있는 제품’이어야 하기에 ‘소싱’ 능력도 중요하게 요구된다”고 말했다.
성가은(23·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씨 역시 이런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는 바이어 발굴에 석달간 공을 들였다. 성씨는 “어떻게 결론 날지를 모르면서 무작정 수십곳 업체에 ‘콜드콜링’(cold calling·미리 연락처나 스케줄을 약속하지 않고 잠재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영업 활동)을 시작했었다”며 “그 결과 현지에서 꽤 유명한 식음료 유통사 두어곳과 대면 미팅까지 진행했고, 이들의 니즈를 알아내는 등 성과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불확실해 막연했지만, 막연함 때문에 포기하자니 막중한 일이었다”며 “그래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꿋꿋이 했더니 결국엔 성과가 있었다. 뿌듯했다”고 했다.
단원들에게 어느새 런던은 생활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곳 소비자들에게 어떤 ‘한국의 먹거리’가 어울릴지를 습관처럼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이아린(23·한국외대 국제통상학과)씨는 “영국인들은 퇴근 후 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건강한 술을 먹길 원하는 것 같다”며 “그렇다면 한국 전통술들도 유망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최근 영국 최대 식품 박람회인 SFFF(Speciality & Find Food Fair) 참여를 준비하며 우리 기업 금군양조에서 만든 ‘꽃술’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이들 중엔 평소 관심사와 업무를 조합시켜 이른바 ‘덕업일치’(취미와 직업이 일치)를 이뤄낸 단원도 있었다. 박용권(28·한국외대 프랑스학과)씨는 “영국은 축구의 종주국 아닌가. 손흥민 같은 선수 덕에 영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라며 “인지도 많은 구단을 통해 K푸드를 알려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초반 토트넘과 한달 정도 이야기를 진전시키다가 결국 불발됐다”면서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황희찬 선수가 뛰고 있는 울버햄튼을 통해 다시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2개월여 노력 끝에 결국 성사시켰다”고 했다. 박씨는 “한식이 잘 알려진 런던과 달리 울버햄튼 같은 중소도시에선 한국 음식이 생소한데, ‘알릴 기회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행사는 성황리에 마쳤고 꽤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순 ‘대외 활동’을 넘어서서 실제 ‘영업사원’으로서 뛰고 있었다. 영국 현지에서 유명한 포트넘메이슨·잇수(Itsu)·오카도(OKADO) 등 브랜드와 직접 안면을 트고, 실제 논의를 진전시킨 것도 이들이 해낸 일이다. 그 때문에 단원들을 통솔하는 김해나 aT 영국소장은 국내외 협력 업체 등에 이들을 ‘인턴’이 아닌 ‘직원’으로 소개한다고 했다. 그 역시 과거 AFLO 단원 출신이다.
김해나 소장은 “aT 영국사무소는 사무소장과 AFLO 그리고 국내 식품기업들이 한 팀을 이뤄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며 “팀워크를 통해 한국 농식품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바이어를 발굴하고 또 신규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 각자의 성취가 있을 때마다 다 함께 행복해하며 일하고 있다. ‘할 수 있다’보단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막막하지만 신기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고 전했다.
AFLO 단원 4명은 입을 모아 활동기간인 3개월이 ‘짧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성가은씨는 “수출이라는 게 실제 성사되기까지 워낙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우리가 진행 중인 논의가 초도 수출로 이어지는 걸 보지 못하고 활동을 끝내 아쉽다”고 했고, 신선아씨도 “우리가 그저 씨를 뿌리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석달 전처럼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가지만, 포부는 이전과 다르다. 영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아린씨는 무역업, 신선아씨와 성가은씨는 해외 영업, 박용권씨는 마케팅쪽으로 각각 취업을 준비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박씨는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맞닥뜨린 지난 3개월은 아주 값진 기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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