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북한 핵게임의 정치학
미와의 30년 핵게임 완승 의미
핵보유 인정·제재 완화 등 노린
미 새 정부와의 핵 담판 시그널
북한이 지난달 13일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처음 공개했다. 미 대선에 앞서 그동안 비밀리에 관리해 온 핵 시설을 공개한 북한의 의도는 분명하다. 새로운 미 정부와 핵 담판이다. HEU를 통한 핵무기 제조는 은밀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소규모 시설을 분산 운영할 경우 탐지도 어렵다. 19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핵 프로그램 포기 선언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놀이공원 내 작은 건물 지하 핵시설을 확인하고 매우 놀랐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비핵화 정책을 포기하고 새로운 대화에 나서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고, 핵 군축으로 대북제재를 완화하려는 의도다. 북한 핵협상 패턴을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북한은 2017년 11월 미 전역을 사정권에 둔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를 쏘아 올리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 핵게임 전략은 핵무력 완성 선언 전과 후가 크게 달라진다. 선언 전에는 제재와 압박을 버티며 ‘시간벌기’를 통한 핵무기 개발과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기만과 약속 불이행, 벼랑 끝 전술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핵시설 검증이나 핵포기 의사를 최종 확인하는 단계에서는 항상 판을 깨버리고 모든 합의를 초기화했다. 90년대 초 북한은 3차례에 걸친 IAEA의 핵사찰을 기만과 은폐로 속이며 버텼지만, 미국이 핵시설 사진을 공개하며 특별사찰을 압박하자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판을 깨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8월 출범한 6자회담도 북한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핵무기 폐기와 핵시설 동결의 원칙론적 선언인 9·19 공동성명에 이어 후속 조치를 담은 2·13, 10·3 합의가 잇따라 발표됐다. 북한은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인 다자 대화를 통해 북한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이 피어났다.
그러나 잠시였다. 결국 검증이 문제였다. 부시 행정부에 이어 집권한 2009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검증과 사찰에 대한 입장이 변하지 않자, 북한은 또다시 상황을 원점으로 돌렸다.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하고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이 호의로 HEU 제조시설을 공개한 것이 절대 아니다.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시도했던 2018년, 2019년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은 핵보유국 지위를 공인받으려는 북한의 전략을 상징한다. 당시에도 북한은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쇼를 벌였다. 비핵화 의지를 실천하려는 의미 있는 조치라는 섣부른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북한이 영변 원자력 시설 외 핵시설을 숨기려는 의도가 드러나면서 담판은 실패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라늄 농축기지에서 “이곳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고 했다. 또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북핵 위협이 현실로 구체화하고 있다. 북한의 집요한 노림수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우승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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