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화교들 6·25전쟁 때 정착… 한국인 입맛 '저격'

김재근 선임기자 2024. 10. 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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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대전 맛집 ⑤ 중국집
산동요리에 한국 식자재로 신 메뉴 개발
원도심 태화장·중국성·희락반점 등 유명
훠궈·딤섬·마라탕 등 전문점도 인기몰이

대전의 중국집이 꽤 많은 편이다. 그것도 음식이 꽤 맛있는….

빅데이터 맛집 검색 사이트인 다이닝크드에 '대전 중국집'을 치면 488개가 나온다. 인구가 대전과 비슷한 광주광역시는 400개가 검색된다. 대전이 밀가루를 유달리 좋아하는 도시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집이 많은 게 이해된다. 한국화된 중국식당의 기본적인 메뉴가 밀가루로 만든 자장면과 짬봉이 아닌가?

대전에서 중국음식점이 등장, 성장한 것은 여느 지방 도시와 다름이 없다. 대개 3가지 정도의 역사적,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첫째는 일어난 한국전쟁이다. 1950년 일어난 6.25는 주로 서울과 인천에 살고 있던 화교(중국인)가 전국에 퍼지는 계기가 됐다. 19세기말 청나라 관리와 군대를 따라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인들은 주로 무역과 상업을 하며 살았다. 일제 때도 계속 조선에서 거주했고, 중국의 공산화로 귀향도 불가능해졌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대전 등 전국의 도시와 농촌으로 피란길에 오르게 된다.

□ 산동(북경)요리에 한국스타일 접목

두 번째는 박정희 시절 화교에 대한 경제 통제도 크게 영향을 줬다. 1961년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을 만들어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했다. 땅을 많이 가진 화농(華農)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법은 1968년에 1가구에 1주택 1점포(주택 660㎡ 이하, 점포 165㎡ 이하만)를 취득하도록 다소 완화된다. 1953년과 1962년의 두 차례의 화폐개혁도 화교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화교들이 장롱 속에 쌓아둔 돈을 끌어내 경제개발에 사용하자는 취지였다.

세 번째는 밀가루의 확산이다. 대한민국은 해방-한국전쟁-산업화시대까지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렸고, 미국이 보내준 잉여농산물로 춘궁기를 이겨냈다. 미국이 가장 많이 보내준 게 밀이었고,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다양한 밀가루 음식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대전 충청의 오래된 중국집은 대개 한국전쟁 시기 서울이나 인천, 부산 등에서 유입된 화교들이 운영한다. 토지 소유 제한과 화폐개혁을 겪으며 상당수가 대만 등으로 떠났고 한국에 남은 화교들이 생업으로 택한 게 식당이다. 땅이 없으니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취업에도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화교는 대부분이 산동성 출신이다. 동남아 화교가 복건성 출신, 일본이 대만 출신, 미국과 캐나다 화교가 광동성 출신인 것과 사뭇 다르다. 산동성이 인천과 가까워 쉽게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대한민국 중국음식은 '청요리'로 불리는 베이징요리(산동요리)와 비슷하다. 만두와 면류가 많고 해산물과 오리로 만든 메뉴도 있다. 파와 마늘 양파를 많이 사용하고 찜, 구이, 볶음요리가 주류를 이룬다. 한국인에게 산동요리가 거부감이 없는 것은 산동이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식자재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산동요리를 개량한 깐풍기, 라조기, 유니짜장 등은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꽤 많다. 여기에 짜장, 짬뽕, 탕수육 같은 한국식 메뉴가 더해졌다. 산동요리에 한국 식자재로 한국인에 입맛에 맞춰 '한국식 중국음식'을 창조해낸 것이다.

대전의 중국집은 냉면이나 칼국수, 두부두루치기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이후 원도심 동구와 중구에서 시작돼 서구, 유성구, 대덕구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화교가 운영하는 오래된 중국집은 대개 원도심에 있다.

태화장은 1954년부터 영업을 해온, 대전의 대표적인 중국음식 전문 식당이다.

□ 태화장, 중국성, 희락반점 등 유명

화교가 운영하는 동구 정동의 중국성은 인근 인쇄골목 종사자 등이 찾는 숨은 맛집이다.

대전의 중국집을 대표하는 태화장은 중국 산동성 출신 고복신 사장(2023년 103세로 작고)이 1954년 창업했다. 고 사장은 1935년부터 서울에 와 살다가 한국전쟁 때 강경으로 피란을 했다고 한다. 1952년 대전에 정착, 1954년 대전 동구 정동에 천화각이란 상호로 영업을 시작했고, 1971년 태화장으로 바꿔 현재 이르고 있다. 그는 대전충청화교협회장을 지내는 등 충청권 화교의 얼굴로 활동했다.

한국식 중국음식인 자장면은 중국집을 대표하는 메뉴이다. 동구 정동 태화장의 간짜장.

태화장은 오랜 세월 대전의 중국 음식을 대표해왔다.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는 가족들의 외식 장소였고, 각종 단체와 회사에서 회식을 하곤했다. 요리연구가인 백종원씨가 오랜 단골로, 지금도 가족과 함께 들른다고 한다. 성시경, 영탁, 싸이 등 수많은 유명인이 다녀갔다. 멘보샤와 만두, 고추잡채, 유슬짜장 등의 음식이 모두 맛 있다. 맛을 유지하기 위해 선대의 요리법을 고수하고, 식 재료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만두도 중국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서구 둔산동 태원의 군만두.

현재 태화장은 장남인 고록승이 운영하고 있으며, 둘째 고록안은 서구 둔산동에 태원, 딸 고소정·조동선 부부는 중구 대흥동에 태화원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태원과 태화원도 맛집으로 소문났다.

동구 중동 중국성의 대표 메뉴인 우육면.

중국성도 오래된 중국집이다. 태화장과 가까운 동구 정동에 있으며 대전역과 가깝다. 중국성을 창업한 곽봉삼은 한국전쟁 때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란했다가 대전에 정착했다. 1960년 진동반장(振東飯莊)으로 식당을 시작, 1973년에 중국성으로 상호를 바꿨다. 현재 곽봉삼과 아들 곽성권이 대를 이어 함께 주방을 지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백년가게'로 정통 중국 음식의 맛을 자랑한다. 인쇄골목 종사자와 직장인들의 단골식당으로 우육면, 멘보샤, 자장면, 사천탕수육, 전가복, 잡탕밥 등이 맛있다.

중구 선화동의 희락반점은 유니짜장과 탕수육이 맛있는, 역사가 아주 오래된 중국집이다.

중구 선화동의 희락반점도 오래된 중국집이다. 1912년에 개업한 이래 계속 영업을 해왔으며, 대전시민이라면 대개 한 두 번 들러본 식당이다. 원래 단골이 많았던 차에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방영된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 유니짜장과 탕수육이 인기가 많고 팔보채, 전가복, 누룽지탕도 맛있다.

중구 대흥동의 중국대반점도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오토바이 골목 맞은 편에 위치한 식당으로 탕수육과 군만두, 간짜장 등이 맛있다. 대흥동의 홍리성도 숨은 맛집이다. 화교 출신 부부가 운영하며 탕수육 맛집으로 정평이 나 있다. 30여년 된 식당으로 간짜장과 짬뽕도 수준급이다. 은행동의 봉봉원은 특이하게도 양장피 맛집으로 유명하다. 양장면, 탕수육, 홍합짬뽕 등도 맛있다.

□ 고급대형화, 프랜차이즈 중국집도 등장

원도심에서 화교가 운영했던 세운성대반점, 극동대반점 등은 문을 닫았고, 탕수육 맛집 인화영은 충남 금산 복수면으로 자리를 옮겨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신도심인 서구에도 중국집 맛집이 꽤 있다. 자유대반점은 1965년부터 중구 선화동에서 영업을 하다 1999년 둔산동 법원 앞으로 이전하여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당일 조달한 신선한 재료로 조리한 자장면, 짬뽕, 탕수육, 팔보채 등이 맛있다.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의 동천홍은 인근 정부청사와 아파트 주민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사천탕면과 삼선간짜장, 짬뽕 등이 유명하다. 만년동 천년의 정원은 고급 중식당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매콤하고 시원한 짬뽕도 서민들이 즐겨 찾는 중국음식이다. 신탄진 영화반점의 짬뽕.
신탄진 영화반점은 1970년부터 2대에 걸쳐 영업을 하고 있다.

대덕구 신탄진의 영화반점도 오래된 맛집이다. 1970년 개업했고. 1대 전영화를 거쳐 지금은 2대 전우석이 운영하고 있다. 탕수육과 간짜장, 짬뽕이 맛있는 식당이다.

영화반점의 탕수육은 특이하게 감자칩을 얹혀준다.

이외에도 동구 용전동의 중국관, 자양동의 성심관, 대덕구 덕암동의 미강손짜장, 중리동의 여리향과 조기종의 향미각, 유성구 궁동 충남대 앞의 연래춘대반점과 봉명동의 부연부, 원신흥동 메이문 등 수많은 맛집이 영업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시작된 대전의 중국식당은 2000년대 들어서며 크게 양상이 변한다. 화교 식당에서 기술을 배우거나 자격증을 딴 한국인들이 경쟁적으로 문을 열었다. 고급 인테리어로 치장한 대형 중국식당과 프랜차이즈 중국집도 생겨났다. 훠궈와 딤섬, 마라탕, 탕후루 등 특정 메뉴만 파는 전문점도 등장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오늘도 대전 중국음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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