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응급 수술했더니 "10억 원 배상하라"는 판결…'묘수' 없을까? [스프]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2024. 10. 1. 09:03
[주간 조동찬]
건강한 삶을 위한, 믿을 수 있는 의학 정보! '주간 조동찬'에서 전해드립니다.
식당의 '특별한 배려'
얼마 전 가족 여행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는데, 우연히 축제 기간과 겹쳤다. 유명한 광장과 거리마다 공연과 행사가 진행돼 따로 돈을 내지 않고도 카탈루냐 전통춤과 뮤지션들의 노래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다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원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불편했다. 여행 마지막 날은 공교롭게도 토요일이었고, 만찬을 대충 때우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서 구글 지도를 펼쳤다. 근처에 평점 최고인 타파스 식당이 있어 도착했더니, 마침 창문 안쪽으로 빈자리가 보였다. 문 앞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니 누군가가 나타나 예약자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예약하지 않았고 빈자리가 있어서 기다린 것이라고 답했더니, 빈자리에는 오후 7시 30분부터 예약자가 오기로 되어 있단다. 7시 30분까지 식사를 끝낼 수 있다고 맞받아쳤더니, 주방 인력에 여유가 없다며 되받아친다.
그 찰나에 망연자실한 우리 가족의 표정을 알아챘을까? 주인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주변에서 비슷한 식당을 하는 친구였는데, 8시까지 가능하다며 거기라도 괜찮겠느냐?'라고 묻는다. 우리는 고개를 적극적으로 끄덕였는데, 역시 예약 불가 상태의 최고 평점 맛집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따라오라고 했고, 자신은 '한국을 가본 적이 없는데 너무 멀기 때문'이라고 했다. 5분 정도를 걷자, 반대편에서 다른 식당의 주인이 우리를 건네받았다. 두 번째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2인 탁자 하나가 비어 있었고, 주인은 의자 하나를 더 놓아주었다. 식사하는 동안 발길을 되돌리는 많은 손님을 보면서, 우리는 두 식당이 우리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준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년 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에게 뇌출혈이 발생했는데,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전국민적인 성토가 이어졌고, 대책으로 정부는 의대 증원을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떠나면서 의료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신경외과 전문의 숫자(4.75명)는 OECD 평균(1.33명)의 3배가 넘지만, 왜 국내 최대 병원의 뇌수술 의사는 2명뿐인지, 그 구조적인 문제는 충분히 보도됐다.
그런데 당시 의료진들의 특별한 배려는 보도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시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주치의는 간호사의 뇌동맥류를 코일로 막으려고 했다가 동맥류가 파열됐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제아무리 능숙한 신경외과 의사라도 완벽히 피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예후는 안 좋지만 그래도 개두술을 해봐야 한다. 그런데 같은 병원 뇌수술 의사 2명은 휴가를 내고 해외 학회와 지방에 있었다. 주치의는 본인이 가장 편한 동료인 고대구로병원 뇌수술 의사에게 전화했고, 그 동료는 '지금 출발하면 병원까지 1시간 걸리는데, 병원에 가고 있을 터이니 그사이 더 빨리 되는 곳 있으면 그곳에 부탁하라'고 답했다. 주치의는 바로 서울대병원 동료에게 전화했고, 다행히 '1시간보다 빠르게 수술이 준비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어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것이다.
뇌출혈 환자가 병원을 옮겨 1시간 이내에 수술받는 건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보건 선진국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과가 좋지 않아서 이 과정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당시 사건의 이면에는 의료진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
군의관 시절,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의 어머니가 심정지로 쓰러졌고, 나의 모교 대학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며, 중환자실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중환자실 있는 병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1년 후배인 모교 병원 심장내과 주치의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는데 단호하게 거절하며, '함께 중환자실 있는 병원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이곳저곳 문의를 해봤지만, 받아 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30여 분이 지난 후 주치의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선생님, 이 환자를 제가 입원시키려면 일반 병실 처치실에서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결과가 잘못돼 환자 보호자가 소송하면 저는 질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도 잘 아실 테지만, 중환자를 일반 병실로 받는 건 규칙을 어기는 거잖아요... 환자 보호자가 결과가 어떻든 소송 걸지 않겠다고 선생님이 보장해 주시면 제가 병원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규칙을 어겨가며 환자를 입원시키려면, 내과 과장 혹은 병원장의 허락까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본인의 업무가 아닌데도 중환자를 감당해야 할 일반 병동 간호사들의 특별한 양해도 구해야 한다. 병원의 특별한 배려로 친구 어머니는 일반 병실 처치실에서 치료받다가 며칠 후 중환자실로 옮겼고, 최선의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나는 그 과정을 친구에게 설명했고, 친구는 의료진의 특별한 배려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건강한 삶을 위한, 믿을 수 있는 의학 정보! '주간 조동찬'에서 전해드립니다.
식당의 '특별한 배려'
얼마 전 가족 여행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는데, 우연히 축제 기간과 겹쳤다. 유명한 광장과 거리마다 공연과 행사가 진행돼 따로 돈을 내지 않고도 카탈루냐 전통춤과 뮤지션들의 노래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다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원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불편했다. 여행 마지막 날은 공교롭게도 토요일이었고, 만찬을 대충 때우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서 구글 지도를 펼쳤다. 근처에 평점 최고인 타파스 식당이 있어 도착했더니, 마침 창문 안쪽으로 빈자리가 보였다. 문 앞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니 누군가가 나타나 예약자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예약하지 않았고 빈자리가 있어서 기다린 것이라고 답했더니, 빈자리에는 오후 7시 30분부터 예약자가 오기로 되어 있단다. 7시 30분까지 식사를 끝낼 수 있다고 맞받아쳤더니, 주방 인력에 여유가 없다며 되받아친다.
그 찰나에 망연자실한 우리 가족의 표정을 알아챘을까? 주인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주변에서 비슷한 식당을 하는 친구였는데, 8시까지 가능하다며 거기라도 괜찮겠느냐?'라고 묻는다. 우리는 고개를 적극적으로 끄덕였는데, 역시 예약 불가 상태의 최고 평점 맛집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따라오라고 했고, 자신은 '한국을 가본 적이 없는데 너무 멀기 때문'이라고 했다. 5분 정도를 걷자, 반대편에서 다른 식당의 주인이 우리를 건네받았다. 두 번째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2인 탁자 하나가 비어 있었고, 주인은 의자 하나를 더 놓아주었다. 식사하는 동안 발길을 되돌리는 많은 손님을 보면서, 우리는 두 식당이 우리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준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형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특별한 배려'
2년 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에게 뇌출혈이 발생했는데,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전국민적인 성토가 이어졌고, 대책으로 정부는 의대 증원을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떠나면서 의료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신경외과 전문의 숫자(4.75명)는 OECD 평균(1.33명)의 3배가 넘지만, 왜 국내 최대 병원의 뇌수술 의사는 2명뿐인지, 그 구조적인 문제는 충분히 보도됐다.
그런데 당시 의료진들의 특별한 배려는 보도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시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주치의는 간호사의 뇌동맥류를 코일로 막으려고 했다가 동맥류가 파열됐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제아무리 능숙한 신경외과 의사라도 완벽히 피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예후는 안 좋지만 그래도 개두술을 해봐야 한다. 그런데 같은 병원 뇌수술 의사 2명은 휴가를 내고 해외 학회와 지방에 있었다. 주치의는 본인이 가장 편한 동료인 고대구로병원 뇌수술 의사에게 전화했고, 그 동료는 '지금 출발하면 병원까지 1시간 걸리는데, 병원에 가고 있을 터이니 그사이 더 빨리 되는 곳 있으면 그곳에 부탁하라'고 답했다. 주치의는 바로 서울대병원 동료에게 전화했고, 다행히 '1시간보다 빠르게 수술이 준비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어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것이다.
뇌출혈 환자가 병원을 옮겨 1시간 이내에 수술받는 건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보건 선진국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과가 좋지 않아서 이 과정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당시 사건의 이면에는 의료진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
"선생님, 소송 안 거실 거죠?"
"선생님, 이 환자를 제가 입원시키려면 일반 병실 처치실에서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결과가 잘못돼 환자 보호자가 소송하면 저는 질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도 잘 아실 테지만, 중환자를 일반 병실로 받는 건 규칙을 어기는 거잖아요... 환자 보호자가 결과가 어떻든 소송 걸지 않겠다고 선생님이 보장해 주시면 제가 병원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규칙을 어겨가며 환자를 입원시키려면, 내과 과장 혹은 병원장의 허락까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본인의 업무가 아닌데도 중환자를 감당해야 할 일반 병동 간호사들의 특별한 양해도 구해야 한다. 병원의 특별한 배려로 친구 어머니는 일반 병실 처치실에서 치료받다가 며칠 후 중환자실로 옮겼고, 최선의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나는 그 과정을 친구에게 설명했고, 친구는 의료진의 특별한 배려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외과 전문의의 '특별한 배려'와 10억 원
2017년 3월, 생후 5일 된 신생아가 녹색 구토로 병원을 찾았다. 소아과 전문의는 '중장 이상 회전과 꼬임이며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장이 오래 꼬여 있으면 꼬인 장이 썩어 들어가 패혈증에 빠지고 그럴 경우 사망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병원에는 당시 소아외과 의사가 없었고, 소아외과 의사가 있는 다른 병원을 찾기도 어려웠다. 현재 외과 전문의 8,800명 가운데 외과학회가 인정한 소아외과 전문의는 73명뿐이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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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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