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의 은둔·눈 앗아간 피습…살인명령 표적이 된 ‘악마의 시’ 작가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10. 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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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나이프’ 출간 살만 루슈디 인터뷰
1989년 이슬람 살인명령 후
2022년 무슬림청년 칼에 찔려
당시의 경험 생생하게 담고
폭력과 예술 사유한 책 펴내
“소설 ‘악마의 시’ 자랑스러워
자유엔 적만큼 친구도 많아”
피습사건 회고롭 ‘나이프’를 출간한 살만 루슈디. 그는 2022년 무슬림 청년의 암살시도로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Rachel Eliza Griffiths]
20세기 문학사 최악의 사건은 ‘악마의 시’ 논쟁일 것이다. 아랍권과 서방세계가 외교갈등을 빚으며 정면충돌하게 만든 이 소설 출간 이후, 저자 살만 루슈디는 평생을 망명과 은둔의 울타리 속에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루슈디는 다시 최악의 시간을 마주한다. 테러를 당한 것이다. 눈 떠보니 오른쪽 눈에 칼이 박힌 채였고 15군데를 찔렸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피습 이후의 경험을 바탕으로 루슈디는 올해 4월 회고록 ‘나이프(Knife)’를 출간했다. 일평생 위협에 시달렸던 논쟁적 인물이 ‘폭력과 예술’을 사유한 책이다. 이 책이 한국에도 번역 출간됐다.

30일 루슈디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냉소와 희망이 공존하는 문장이었다.

“혐오는 늘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혐오가 승리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신간 ‘나이프’를 이해하려면 시계추를 1989년 2월로 맞춰야 한다. “이슬람 모독 소설”로 오독(誤讀)된 그의 1988년 장편소설 ‘악마의 시’ 출간 무렵 말이다. 이슬람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듬해 루슈디에게 파트와(살인 명령)를 선포했고, 아랍과 아프리카의 광분한 행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루슈디를 죽여라”라며 핏대를 세웠다. 루슈디가 인도계 영국인인 탓에 영국과 이란은 정면 충돌한다.

루슈디는 이후 경찰 보호 아래 평생 은둔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2022년 11월, 루슈디는 미국의 한 강연장에서 24세의 무슬림 청년의 칼에 쓰러진다. 파트와 선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청년이 ‘악마의 시’를 읽지도 않은 채로 종교에 사로잡혀 루슈디를 공격한 것. 공교롭게도 그날 루슈디의 강연 제목이 ‘작가를 위협에서 보호하는 법’이었던 까닭에, 청중은 루슈디 암살사건이 일종의 ‘퍼포먼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상황이었다. 루슈디는 목, 눈, 뺨, 가슴, 복부, 손등 등 15군데를 깊이 찔린 채 기절한다. 한쪽 눈을 완전히 실명하고 안면 함몰로 근육 신경이 죄다 끊어지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선 루슈디는 ‘악마의 시’ 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나는 내 책 ‘악마의 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표현의 자유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죽어버리는 자유가 아닌가. 표현의 자유는 우익과 좌익 양측으로부터 강력히 보호받아야 한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그렇게 해온 것처럼.”

신간 ‘나이프’는 2015년 출간된 루슈디 자서전 ‘조지프 앤턴(루슈디가 자신의 가명을 책의 제목으로 삼음)’과 루슈디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문이다. 총 8개 챕터로 구성됐는데, 백미는 ‘A’라는 부제가 달린 제6장이다.

A는 피습사건의 범인, 즉 하디 마타르를 류슈디가 익명으로 지칭한 표현이다. 루슈디는 A와 사건 이후 조우한 적이 없지만, 그는 A와의 가상의 대화를 이어간다. 이번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이 담겼다.

“A가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A가 성찰과 반성을 하며 살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6장을 쓰는 이유는 그가 이 이야기의 일부가 돼야 하고, 그를 나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젠 그가 ‘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사회와 개인의 전방위적인 검열에 대해 그는 고개를 젓는다. 검열이란 개인의 책임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검열은 보통 우리보다 많은 걸 안다고 믿고 그 지식을 우리에게 억지로 부과하려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것이 개인이든 종교든 국가든. 나는 미래를 잘 예언하지 못하지만 다행히 자유에는 적만큼 친구도 많다.”

이번 루슈디 책의 핵심적인 표현은 ‘언어라는 칼’이 아닐 수 없다. 루슈디는 자신을 찌른 칼의 물리적 힘보다 더 거대한 힘을 가진 ‘언어의 힘’을 강조하는데(제4장), 이를테면 이런 문장이다.

‘언어도 칼이었다. 언어는 세상을 베어 세상의 의미를, 그 내적 작동 방식과 비밀과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언어는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베어들어갈 수 있었다. 만일 내가 원치 않는 칼싸움에 예기치 않게 휘말린다면, 내가 맞서 싸우는 데 사용하는 칼은 언어일 것이다.’ (143쪽)

무수한 작가들은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언어라는 칼을 쥐었고, 물리적 칼과 언어라는 칼의 충돌 이후 승패 결과는 언어의 승리였다고 그는 쓴다.

“언어와 그 사용, 그러니까 글쓰기는 지금도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여느 작가들처럼 나도 언어를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려 노력해 왔다.”

문학의 힘이 줄어드는 시대에도 그는 “글쓰기는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확언한다.

“문학은 인류에게 인류의 이야기를 전하는 존재이자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유산이다. 문학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릴 수 있는 최고의 초상(肖像)이다.”

살만 루슈디 ‘나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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