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날
미국 대선이 다가올수록 트럼프가 재선(再選)돼 백악관에 발 디디는 장면을 자주 상상하게 된다. 당선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 미칠 여파가 더욱 커서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그는 더 이상 눈치 볼 이유도, 자제해야 할 이유도 없다. 트럼프의 본성과 충동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반영된 미국의 정책을 우리는 당장 마주해야 한다.
트럼프 1기 때 미국에서 근무했던 우리 당국자들은 “매일 밤이 두려웠다”고 했다. 트럼프가 새벽 2~3시까지 TV를 보면서 수시로 날리는 트윗 때문이었다. 자신을 ‘악의 대통령’ ‘늙다리 전쟁광’이라는 북의 도발에 ‘화염과 분노’ ‘핵 버튼’ ‘꼬마 로켓맨’으로 맞받았다. 20~30자 남짓한 글을 두고 전 세계 언론들이 실시간 속보와 분석 보도를 쏟아냈다. 한국 본부에서 “무슨 뜻이냐”는 전화가 빗발쳤지만 한밤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백악관으로 달려가 고위 참모들에게 물었더니 “나라고 알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트럼프 재임 기간 김정은은 그와 ‘밀당’하는 법을 익혔다. 트럼프의 자존심과 불안감을 자극하는 법을 터득했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핵(核)실험 카드는 트럼프 취임 전까지 아낄 가능성이 크다. 취임 전후 위협 수위를 최고로 끌어올려 그를 씩씩거리게 만들려 할 것이다. “김정은과 잘 지내겠다”고 해왔던 트럼프는 표변해 분노의 ‘말 폭탄’을 쏟아낼 것이다. 약올리는 북한과 성난 트럼프 간 ‘팃 포 탯’(tit for tat·맞대응)은 브레이크 고장 난 트럭처럼 폭주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나는 날 찾아올 것이다. 대선 현장에서 만난 트럼프 참모들은 하나같이 “둘은 다시 만날 것”이라고 했다. 빠르면 취임 첫해, 아니면 내후년 국내 정치가 막다른 길로 몰리면 언제든 ‘미북 회담’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1기 때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무슨 조건으로 다시 보겠다는 건가.
핵심 참모들은 “트럼프만이 안다”고 했다. 확실히 모르겠다는 뜻이다. 기자가 관찰한 트럼프는 미 본토를 노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핵 동결 등 북한의 제안을 언제든 그럴듯하게 포장해 “미국이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북핵을 지고 사는 한국의 안보는 후순위다. 트럼프 1기 때 최측근 인사가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쪽(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수천명이 죽는다고 해도 여기(미국)가 아닌 저쪽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던 걸 잊어선 안 된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되는 즉시 닥칠 수 있는 일들이다. 트럼프 취임 직후부터 단계별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우리 정부가 세세하게 마련해놨을 거라고 믿는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한·미 소통 채널을 잘 다져야 할 것이다. 트럼프가 불쑥 들이미는 ‘거래’들에 어떤 입장을 바탕으로 대응할지도 정해놔야 한다. 당선된 뒤 생각하면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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