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피습’ 작가 루슈디 “나의 후회를 읽겠다면 책 덮으시라”
2년전 무슬림 극단주의자 테러
이후 첫 회고록 4월 현지 출간
“폭력을 예술로 답” 국내 소개
이 작품엔 단 한명만 익명으로 존재한다. 에이(A), 그가 아니었다면 책은 쓰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글쓴이는 그의 이름을 부르도록 두지 않는다.
“글에 그의 이름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나의 공격자(Assailant), 나를 살해하려 한 자(would-be Assassin), 나에 대해 멋대로 추정(Assumption)한 우둔한(Asinine) 자, 나와 치명적인 밀회(Assignation)를 한 자…. 나도 모르게 그를, 아마도 용서하는 의미에서 머저리(Ass)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 나는 이 책에서 그의 동기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2022년 8월12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뉴욕주 셔토콰협회 강연장 단상, 막 좌담회를 시작하려던 중 무슬림 극단주의자의 피습으로 사경에 처했던 작가 살만 루슈디(77)의 서술이다. 그가 41살이던 1988년 펴낸 소설 ‘악마의 시’로 이슬람과 무함마드를 모독했다며, 이듬해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내린 공개 처형 칙령(파트와)이 33년 만에 이행된 셈이다. 작가가 당시 돌진하는 에이를 보며 떠올린 첫 생각은 “그래, 너로구나, 이제 왔네”였다고 한다.
지난 4월 현지 출간된 ‘나이프’는 당시 사건과 진실, 고통, 극복 과정, 신념에 대한 집요한 사유의 회고록이다. 수치, 절망, 분노가 고스란하다. 왼손, 목, 얼굴, 가슴, 하복부, 허벅지 그리고 오른쪽 눈에 박힌 “칼”의 “속삭임”은 패배를 요구한다. 이 ‘치명적 밀회’로부터 자신이 운명과 화해하고 “폭력에 예술로 답하기”까지, 한때 비평에도 열심이었던 작가답게, 인류가 건사한 수많은 문학작품과 작가들이 소환된다.
작가는 국내 언론과 한 서면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쓸수록 쉬워졌다”고 했다. 회고록에서 한 가지는 여일했다. 루슈디 특유의 유머다. 24살 남자(레바논계 하디 마타르)의 27초간 무차별 난자질에도 흠지지 않았다. 구명 조처를 위해 자신의 옷이 잘릴 때 ‘내 멋진 랄프로렌 정장’을 떠올렸다니 말이다.
이번주 국내 출간에 앞선 인터뷰에서 루슈디는 “에이가 내 책을 보거나 성찰과 반성으로 살게 되리라 생각지 않는다”며, 회고록을 씀으로써 “이젠 그가 내 것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종 간결하고 단호한 답변 태도와 달리 저 말만 “이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얻었다”는 말로 반복되고 있었다. 루슈디는 에이와 대화(가상)하고, 에이가 수감된 셔토콰 구치소를 방문(실제)한다. 증언하기 위함이다. ‘재앙적 타격’ 이후에도 “우리의 행복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루슈디의 회고록이 없지 않았다. ‘조지프 앤턴’(2012)은 자서전으로도 불린다. 파트와가 내려진 이래 도피·은둔한 13년치 생생한 기록이었다. 당시 작가는 자신을 타자화해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네가 지키려 하는 것들이 정말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가?’ 그는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다.’ 카멘 칼릴이 ‘그 망할 놈의 책’이라고 불렀던 것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죽을 각오까지 했다”고 썼다. 신념은 신념이라서, 그는 막상 피습 뒤 “고통으로 울부짖었다”(청중들 증언). 작가 스스로도 쓰길 “나의 일부는 속삭였다. 살아, 살아.” 피습 이틀 뒤, 생사의 고빗사위를 넘긴 작가는 새 “기록”을 결심한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저작보다 진솔한 루슈디가 이 책엔 비친다.
“다시 태어나려면 우선 죽어야 한다네”로 시작하는 ‘악마의 시’에서 선과 악, 약과 강 등이 대결하듯, 이번 회고록에서 에이의 대척에 선 인물로 아내 엘리자(시인·사진가)가 선명하다. 4년여 연애 끝 2021년 9월 결혼한 아내(다섯번째)다.
1998년 파트와는 철회되지만, 작가는 피습 사건 이틀 전에도 원형극장에서 검투사에게 위협당하는 악몽을 꿨다. “너무 오래된” 복선이 현실이 되고 만다. “내 과거가 내게 돌진해온다. 꿈속의 검투사가 아니라, 마스크를 쓰고 칼을 든 남자가 삼십년 전에 받은 살해 명령을 실행하러 다가온다. 죽음 속에서 우리는 모두 과거시제에 갇혀버린 어제의 인간이다. 그것이 바로 칼이 나를 집어넣고 싶어 한 철창이다.”
결국 에이의 칼에 굴복할 때, 작가는 미래가 아닌 과거, 진리가 아닌 망령, 자유가 아닌 억압, 사랑이 아닌 증오에 갇히게 되는 격. 작가는 이 “추문의 내러티브”를 거부하겠다 한다. 이번 인터뷰에서 “‘나이프’는, 혐오의 대척점에 서서 혐오를 이기는 사랑, 그 사랑의 힘에 관한 책”이라고 강조한 맥락이다.
루슈디는 병상에서부터 아내와 동행하여 기록하고, 마침내 2023년 9월18일 셔토콰 텅 빈 극장 단상에 다시 선다. 그때 떠올린 시가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1849~1903)의 ‘인빅투스’(Invictus, 굴하지 않는)다. 이 시 4연 마지막 두 행을 외친 명사·작가들은 많았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다.” 살만 루슈디는 2연 마지막을 되뇐다. “운명의 몽둥이질/ 내 머리는 피투성이 되어도 굽히지 않는다.”(별도 번역함) 4연이 신념이라면, 2연은 증언일 것이다. 루슈디는 책에 “내가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여기서 그만 읽어도 좋다”고 썼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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