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0] 폭풍우를 뚫고서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4. 10. 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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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코트, 폭풍우, 1880년, 캔버스에 유채, 234.3 x 156.8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어둑한 가을밤, 갑작스레 천둥 번개가 내리치며 비가 쏟아진다. 허리에 뿔피리를 찬 목동과 속이 훤히 비치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아가씨가 겉옷을 우산 삼아 비를 피해 황급히 달린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가씨의 눈동자에는 불안이 가득한데, 그런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목동은 지금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분간할 틈도 없이 그저 행복에 젖었다.

19세기 말, 프랑스 아카데미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코트(Pierre Auguste Cot·1837~1883)는 1880년 이 작품을 파리 살롱에 전시했다. 눈 높은 평론가들은 진부하다 혹평했고, 또 다른 평론가들은 과연 이 남녀가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 소설의 주인공들인지, 아니면 고대 그리스 서사시의 주인공들인지 갑론을박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면서 은근히 선정적인 이 그림에 열광했다.

코트에게 ‘폭풍우’를 주문한 건 미국 컬렉터 카트린 울프였다. 부모로부터 요즘 가치로 4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수많은 학교와 박물관, 자선단체에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폭풍우’를 비롯한 미술 컬렉션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한 다음이었다. 소수의 부유층만을 위한 곳이었던 메트로폴리탄에 ‘폭풍우’를 보려고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면서 그제야 미술 감상이 일반 대중을 위한 문화 생활로 자리 잡았던 것. 오늘날의 로맨스물에서도 때마침 내리는 소나기는 수줍은 청춘남녀를 이어주는 단골 소재다. 때 아닌 비가 온다며 혀를 차면서도, 설렘이 쉬이 가시지 않는 건 19세기나 21세기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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