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국군 북진이 만든 창성의 변화
김일성은 겁에 질렸다. 그는 국군이 북진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자 3일에 두 자녀 김정일과 김경희를 포함한 가족들을 중국으로 피란시켰다.
국군과 유엔군이 군단별로 38도선을 모두 넘어선 11일 저녁 김일성은 라디오로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하자’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몇 시간 뒤인 12일 새벽 그는 스탈린이 선물한 고급 리무진을 타고 비밀리에 도주하기 시작했다. 평양이 함락되기 일주일 먼저 도망을 친 것이다.
북한 라디오에선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지역을 사수하라는 김일성의 연설이 반복적으로 방송됐다. 김일성은 도주 중이던 16일에 또 ‘각 군단, 사단들에선 독전대를 즉각 조직해 도주하는 자들을 즉결 처단하라’는 비밀지령을 하달했다.
북한이 정한 제2의 수도는 강계였다. 김일성은 이곳에 주요 정부 기관을 보내곤 자기는 폭격을 당하기 싫어서인지 딴 곳으로 도주했다. 청천강에서 막히자 차를 버리고 평안남도 덕천을 경유해 평안북도 동창으로 산을 타고 이동했다. 마침내 25일 압록강변 창성에 도착해 11월 3일까지 머물렀다.
김일성은 창성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높은 산들이 막아 중국 영공으로 돌아오지 않고선 폭격도 불가능했고, 중국으로 도망칠 조건도 완벽했다. 바로 옆에 있는 수풍호는 겨울엔 차가 다닐 정도로 꽁꽁 얼고, 여름 홍수 때에도 배를 띄울 수 있다. 인근엔 중국과 연결된 수풍댐도 있다.
전후 창성엔 창성초대소로 불리는 김일성 별장이 건설됐다. 이 초대소는 오늘날까지 김 씨 일가가 사용하는 별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김정은의 고향으로 알려진 원산초대소는 974부대(친위대) 8개 중대 2500명이 경호하지만, 창성은 3000명이 지킨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9년 동안 창성초대소 경비를 섰던 974부대 출신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김정일은 가족과 미녀들을 데리고 창성에 가 은신했다. 이는 김일성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었다.
도주로도 완벽히 구축했다. 평양∼향산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향산에 도착하기 직전에 꺾어 창성까지 몇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북한에서 최상급인 이 고속도로는 6·25전쟁 시기 김일성의 도주 경로와 동일하다.
특히 1980년대 건설된 향산과 창성을 연결하는 약 150km 길이의 ‘1호 도로’는 폭이 9m나 되는데, 김 씨 일가만 사용할 수 있다. 일반인이 도로에 올라서면 경비를 서는 974부대에 즉시 체포돼 처벌된다. 도로 양옆에 높은 잎갈나무를 심어 정찰기에 차가 보이지 않게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창성초대소 바로 옆에 비행장도 번듯하게 건설됐다. 평시나 유사시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는 옵션을 추가한 것이다.
김일성은 전쟁 위기 때마다 창성에 도망가는 것이 부끄러웠거나 아니면 이곳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무료했던지, 1962년 8월에 갑자기 “궁벽한 산골로 버림받던 창성 땅을 전국의 본보기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북한에서 지방 공업 발전의 강령적 지침이라고 반세기 넘게 떠받들고 있는 이른바 ‘창성연석회의 결정’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창성을 현지지도한 횟수가 각각 108회, 60회라고 밝혔다. 북한에서 김 씨 일가가 이렇게 많이 공식 방문한 지역도 없다. 그럼에도 지방의 본보기로 삼겠다던 창성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북한 매체들도 차마 창성이 본보기라고 하진 않는다. 김정은 시대엔 전국의 본보기가 삼지연으로 바뀌었는데, 그가 창성보단 스키를 타려 백두산에 더 많이 놀러 다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달 9일 김정은은 연설을 통해 “지방의 낙후성을 털어버리기 위한 사업이 근 80년에 달하는 기간 해내지 못했던 사업”이라고 자인했다. 그러면서 “10년 안에 지방의 특수성을 반영한 공장 200개를 건설해 지방의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62년 전 김일성도 창성에서 “지방 특성에 맞는 공장들을 대거 건설해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일성은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고 비단옷을 입히겠다”고 좀 더 구체적인 공언을 했는데, 김정은이 말한 ‘획기적으로’의 의미는 알 수가 없다. 발전 없이 퇴보만 하다 보니 속이는 방법까지 퇴보하는 듯하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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