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후티도 폭격...이스라엘 ‘삼면전’ 태세
이스라엘이 지난 29일 예멘의 이슬람 무장 단체 후티에 대한 공습에 나섰다. 표적 공습으로 레바논 무장 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폭살한 지 이틀 만이다. 헤즈볼라와 후티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함께 ‘저항의 축(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무장 단체)’의 일원으로,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에 돌입한 하마스를 도와 이스라엘을 겨냥한 공격에 가세해왔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마스, 헤즈볼라에 이어 후티까지 연쇄 타격하자 일각에선 “이스라엘이 11월 미국 대선 전 저항의 축을 궤멸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예멘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근거지를 공습했다”고 발표했다. 예멘 서부 호데이다항(港)과 인근 라스이사 항구의 항만 시설과 발전소가 폭격을 받았다. 이스라엘군은 “후티는 이 시설들을 이용해 (이란이 지원한) 석유와 각종 무기를 공급받아 왔다”고 밝혔다. 예멘은 이스라엘에서 약 1800㎞ 떨어져 있다. 이스라엘군은 장거리 공격을 위해 전폭기와 공중급유기, 정찰기를 포함한 수십 대의 이스라엘 공군 항공기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격 직후 소셜미디어에는 호데이다항에 10여 차례의 폭발음과 함께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영상들이 올라왔다. 후티의 선전 매체 알마시라TV는 “최소 4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했다”며 이스라엘의 공습 사실을 인정했다. 이스라엘의 후티 공격은 2개월여 만이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겨냥한 공격도 멈추지 않았다. 30일 새벽 베이루트 서남부의 알콜라 지역을 폭격, 이 지역의 아파트 한 채를 완파했다. 알콜라 지역은 베이루트 중심부에 속하는 곳으로,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시내를 폭격한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이다. 이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의 지도자 3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은 동시에 레바논 남부도 표적 공습해 이 지역에서 암약하던 하마스 지도자 파테 아부 엘아민과 그의 가족을 폭살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을 협공해 온 ‘저항의 축’을 모두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강공을 이어가는 이스라엘의 행보에는 “미국 대선 전에 이 전쟁의 끝장(end game)을 보려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의중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대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미국 정치권이 11월 대선 전까지는 이스라엘을 말리지 못할 것으로 보고, 그 전에 가능한 모든 군사적 역량을 동원해 저항의 축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선 후 미국의 종전 압박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차기 미국 대통령에게 ‘중동 평화’란 선물을 안기면서 원만한 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현재 이스라엘을 초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현재 중동 위기의 해법을 두고 네타냐후와 여러 차례 이견을 표출하며 불편한 관계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까지도 나스랄라 사망 소식에 일제히 “수많은 희생자를 위한 정의의 조치”라며 환영 성명을 냈을 정도다. 다만 아랍계 미국인 지지세가 강한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종전 압박이 거세질 전망이다.
잇따른 군사작전의 성공은 궁지에 몰렸던 네타냐후의 정치적 입지에도 숨통을 열었다. 지난 29일 이스라엘 TV 매체 채널12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은 43%대로 껑충 뛰었다. 열흘 전에는 35%였다. 집권 리쿠드당의 지지율도 지난 24일 여론조사에서 24%로 주요 정당 중 1위를 기록했다. 전쟁 장기화와 인질 송환 지연, 사법부 무력화 시도 등의 각종 악재로 거센 반정부 시위에 직면하며 폭락했던 지지율이 뚜렷한 반등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스라엘 현지 매체들은 “헤즈볼라와 전쟁으로 대중의 관심이 전환되고 나스랄라 제거라는 성과까지 올린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서방과 관계 개선을 꾀하는 이란이 확전 부담 때문에 쉽사리 이스라엘 공격에 나서지 못하는 것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편 사망한 나스랄라의 외사촌 하심 사피에딘(60)이 헤즈볼라의 새 지도자(사무총장)에 올랐다고 중동 언론들이 30일 보도했다. 사피에딘은 1964년 레바논 남부 이슬람 시아파 가문에서 태어나 나스랄라와 함께 이란·이라크 등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98년 헤즈볼라 핵심 직책인 집행위 이사장에 오르며 나스랄라의 후계자로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피에딘은 이란 지도부와도 가까운 관계로 알려졌다. 사피에딘의 며느리는 2020년 미군 무인기 공습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딸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외곽 공습으로 나스랄라가 사망했을 때 현장에 있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 다만 헤즈볼라는 “아직 후임자를 정한 바 없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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