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우리는 정말 공공의료를 원하는가
2024년 8월23일 소방공무원 노동조합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환자 수용 거부, 생명을 지우는 선택”이라는 플래카드 앞에 선 이들은 ‘응급실 뺑뺑이’를 돌며 절규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소개했다. 7월30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졌던 40대 응급환자가 14곳의 병원에서 수용 거부를 당하고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고, 바로 다음날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환자 역시 10여곳의 병원에서 수용을 거부당하고 사망에 이르렀다. 그들은 지금의 의·정 갈등 이전부터 응급실 뺑뺑이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음을 지적하며, 시급히 응급환자 이송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했다.
소방공무원 노조는 현장에서 구급대원과 실제 병원과의 통화내용을 공개했다. “뇌졸중 의심되는데 안 되는 거죠? 일단 알겠습니다.” 통화 내용은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2022년 2월 동료로부터 늦은 시간 전화를 받았다. 고령의 아버지가 뇌졸중이 의심되는데 지금 집 안에 119응급대원이 와 있는데 대화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상황인즉슨, 아버지가 당일 미열이 있어 코로나19 PCR검사를 했고, 결과가 다음날 나오기 때문에 현재 응급실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아버지의 증상을 듣고 당장 응급진료가 필요함을 응급대원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 대원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의심 환자는 현재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이 남아 있질 않다고 말이다. 당시 동료와 가족들에게 남은 건 ‘기다림’밖에 없었다.
‘기다림’은 약자에겐 가혹한 형벌이며 권력자에게 ‘기다림의 정치’는 강력한 무기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2020년 3월18일 경북 경산시에 거주하던 고등학생 1학년(고 정유엽군)은 코로나19 감염으로 강력히 ‘의심’된 채 14번의 검사를 받으며 격리조치됐다. 인근 대학병원 격리실에서 6일간 머무르다 사망에 이르렀다. 그렇게 ‘의심’되던 코로나19 감염은 결국 음성이었다. 가족들에겐 코로나19 검사결과가 연이어 음성이 나왔음에도 ‘기다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가는 길도 지켜보지 못한 채 아이를 떠나보낸 아버지는 사망 1주년에 ‘공공의료’ 확대를 요구하며 24일간의 도보행진(총 375.4㎞)을 했다.
앞의 동료의 아버지는 다행히 뇌졸중이 아니었고, 코로나19로 확진돼 격리치료 후 건강하게 퇴원했다. 하지만 같은 ‘의심’ 환자였던 학생은 끝내 퇴원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건 그의 아버지가 당시 직장암 3기로 치료받고 있었고, 또다시 암 전이가 확인돼 힘든 항암치료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응급실 대란 앞에 과거의 두 사건을 소개한 이유는 이 대란의 피해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다. 앞선 모든 사례들은 우리보다 ‘앞줄’에 서 있었던 이들에게 발생한 일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정부와 의사 어느 쪽으로부터도 해결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당장에 질문보다는 불행이 달라붙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가. 혹은 불행도 숙명이라며 체념을 하고 있어야 되는가.
사라 아메드는 불행과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에 휩쓸리게 되면 그것의 ‘역사성’이 망각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응급실 대란의 역사적 배경과 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의료비지니스의 시대> 저자 김현아 교수(한림대성심병원 류마티스 내과)는 지금의 응급실 사태에 대해 “우리는 정말 공공의료를 원하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모든 사태 이전에 한국은 벌써 공공병원보다는 이윤을 창출하는 민간병원이 의료의 중심이 된 지 오래됐음을 지적한다. 단적으로 코로나19 사태 당시 공공병원 병상 수가 OECD 최저 수준이었던 반면, 2022년 기준 사립병원 병상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한국의 병원 90% 이상이 민간병원이 될 때까지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내왔고 앞으로 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의료비즈니스의 성공은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도 한 축을 이룬다. 정말 당사자가 되기 전에 과연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절실하게 공공병원의 확충을 요구할지 의문이다. 이것은 결코 시민 탓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김현아 교수의 질문처럼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이젠 늦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공공병원’을, 나아가 ‘공공선’을 진정 원하고 있는가. 답변을 더는 늦출 수 없다. 응급실 사태는 ‘남’의 문제가 아닌 아직 순서가 오지 않은 ‘우리’ 모두의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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