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책임’에 엇갈린 판결…“이게 나라냐” 유족들 울분
경찰책임자 업무상과실 첫 인정…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금고 3년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구청 관계자들 전원 무죄…“과실 인정 안 돼”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관련 경찰 책임자의 과실이 처음으로 인정됐다. 사고 발생 702일 만이다. 참사에 부실 대응해 피해를 키운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54)은 1심에서 금고 3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같은 혐의를 받는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63) 등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2년간 '책임자 엄벌'을 촉구한 유족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라며 울분을 토했다.
3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에 대해 각각 선고 공판을 열었다. 법원은 이 전 서장에 금고 3년, 박 구청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또 이 전 서장과 같이 재판에 선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은 금고 2년을, 박인혁 전 서울경찰청 112 치안 종합상황실 팀장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사고 예견 가능성이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인정되려면 피의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과실 여부, 과실로 인한 사고 상황 예견 가능성, 과실과 사상 간의 인과관계 등 세 가지 요건이 입증돼야 한다.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 모두 같은 혐의가 적용됐지만, 재판부는 이 전 서장에게만 해당 혐의를 인정했다.
두 책임자에 대한 선고가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 전 서장의 참사 당일 대규모 인파로 인한 사고 예견 가능성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2014년 세월호 이후 우리나라 발생 최대의 참사이자 삼풍백화점 이후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최대 인명사고"라며 "이태원 참사가 자연재해가 아니라 각자 자리에서 주의 의무 다하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축제를 맞아 군중이 경사진 좁은 골목길에 군집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치안 유지라는 구체적 임무가 부여된다"며 "대규모 인명 사상이라는 참사 결과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방면 군중 밀집에 의한 일반 사고는 예견할 수 있었고 이를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인파 집중을 예방 통제하고 이를 관리할 경비 기능(담당 경찰관)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별도로 경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핼러윈 축제 현장에서 인파 위험성 등 정보 수집이 필요했지만 사고 당일 현장에 정보관을 배치하지 않는 등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서장은 지난 2022년 10월29일 핼러윈 당시 이태원역 일대에 많은 인파가 몰려 참사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또 부적절한 참사 대응을 은폐하기 위해 상황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행사한 혐의, 지난해 1월 핼러윈 참사 국정조사에서 거짓 진술로 위증한 혐의도 받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 전원 '무죄'…"업무상 과실 인정 안 돼"
반면 재판부는 이날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박 구청장을 비롯한 용산구청 관계자들에겐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여기에는 유승재 전 용산구 부구청장,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 문인환 전 용산구 안전건설교통국장 등이 포함됐다.
박 구청장 등은 지난해 1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대규모 인파로 인한 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재난안전법령에 다중 운집에 의한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에 분류되지 않았다"면서 "특히 재난안전법령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규정 역시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사전대비 대책 마련 과정에서 피고인들에게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할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참사 이후 대응에 대해서도 "구청 당직실에는 서울시 상황전파 메시지 등을 수신할 때까지 압사와 관련된 별다른 민원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고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 받은 사실이 없다"며 "용산구청의 상황 대처가 다소 늦은 것만으로 초기 상황 대응에 현저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한편 재판부는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에 대한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이 전 서장의 위증 혐의 등에 대해선 "오후 11시1분께 이전에 대량 인명 사상 사고 발생 및 피해 규모를 대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용산서 직원들에게 경비기동대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는 것도 허위라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박 구청장이 보도자료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배포하라고 한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직접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부 허위 기재된 내용 역시 보도자료 앞뒤 맥락에 비춰 단순 오기로 보이는 등 참사로 인해 경황이 없는 실무진들의 실수가 있었거나 오류를 검증 못한 상태에서 작성 배포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정현우(54) 전 여성청소년과장과 최아무개 전 생활안전과 경위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앞서 검찰은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에게 각각 징역 7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또 최 전 과장에게는 징역 3년, 송 전 112상황실장에게는 금고 5년이 구형됐다.
"159명이 죽었는데 무죄라니…이게 나란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재판부 판결에 참담함을 토로했다. 유가족들은 이 전 서장의 유죄 판결에는 상대적으로 차분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박 구청장의 무죄 사실을 듣고 고성을 지르는 격앙된 모습이었다. 일부는 박 구청장이 탄 차량을 주먹으로 치거나 차 앞에 누웠다가 경찰에 끌려 나가기도 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59명이 죽었는데 말이 됩니까. 도대체 이 나라의 사법은 어디 있는 거야. 159명이 죽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이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2년이라는 세월 동안 길거리에서 우리 아이들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책임을 가진 자들의 무책임과 무능을 계속 지적하고 이야기했다"며 "그런데도 오늘의 재판 결과는 너무나 참담하기 짝이 없다"고 오열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오후 2시 이 전 서장, 오후 3시30분 박 구청장 순으로 진행됐다. 박 구청장은 선고 후 법정을 나오면서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족이나 희생자에게 할 말은 없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서장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 "(유족에게) 죄송하고 또 죄송스럽다"고 말한 뒤 법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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