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언론인 “우키시마호 등 과거사 덮으면 한일간 신뢰 안 생겨”
2021년 12월 다른 취재 때문에 교토 마이즈루항에 간 일본 언론인 후세 유진은 현지 주민으로부터 우키시마호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1945년 8월24일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태운 배가 폭발로 침몰해 수많은 사람들이 숨졌다는, 오랫동안 안보 문제를 취재한 후세 기자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나 자신도 몰랐고 아마 일본인 99.9%가 모를 것이다. 취재를 시작하고 책과 자료를 찾아봤는데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정보 공개 요청을 시작했는데 곳곳이 까맣게 가려진 자료가 왔다. 사건이 일어난지 8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감추고 싶은 게 이렇게 많구나 느끼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후세 기자의 취재는 결국 일본 정부가 79년간 감춰온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공개로 이어졌다. 이 명부는 지난 9월 한국 정부에도 전달되었다.
3년 전 폭침사고 우연히 알고 충격
정보 요청 뒤 검게 가려진 자료 받고
“아직도 감추려는 게 이렇게 많다니…”
승선자 명부 외 600여개 문서 있어
한국, 인양 등 자료도 공개 요구해야
9월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후세 기자를 만나, 우키시마호의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과 한일 과거사에 대한 생각 등을 들었다.
―우키시마호 취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일본군과 관련된 역사, 안보 문제를 전문으로 취재해왔다.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에 관심을 가진 것을 계기로 기자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들 수만 명이 피폭 당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본 식민지배와 전쟁 시기의 가해의 역사를 기록하고 젊은 세대에 알리는 일이 평생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나 자신조차 2021년까지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 몰랐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고, 끝까지 이 문제를 취재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79년 동안 감춰져 있던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어떻게 밝혀낼 수 있었나.
“우키시마호 사건을 취재하면서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했던 1990년대에 일본 외무성과 후생노동성이 어떤 자료는 공개하고 어떤 자료는 공개하지 말지 검토한 자료를 발견했다. 계속 후생노동성과 자료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후생성 관계자로부터 ‘명부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계속 명부가 없다고 했는데 앞뒤가 안맞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것을 실마리로 삼아 승선자 명부 공개를 요구해 결국 받아낼 수 있었다.”
―이 명부가 어떻게 쓰이길 원하는가.
“승선자 명부 표지에는 몇명이 탔다는 숫자가 적혀 있다. 일본 정부는 3700여명이 승선했다고 발표했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은 승선자가 8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아직 정확한 승선자 수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이 명부를 하루라도 빨리 유가족들에게 제공해 진상을 밝히는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7월에 한국에 와서 유족들을 만났는데, 모두들 한결 같이 ‘시간이 없다’고 하셨다. 유족들이 모두 고령인데, 명부를 검증하는 데 몇 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일본 정부가 승선자 명부를 고의로 감추고 거짓말을 해온 것인가.
“일본 정부는 당연히 명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승선자 명부의 개념을 아주 좁게 해석해 배에 비치된 명부는 침몰할 때 없어졌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복사본이 있었고 승선 예정자 명부도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 명부가 공개되면, 지금까지 승선자가 3700여명이라고 해온 주장의 근거가 약해지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이 식민지배나 강제동원을 안했으면 우키시마호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성실하게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일본 정부가 가지고 있는 70여종의 명부 가운데 한국 정부에 제공한 것은 19종뿐이다. 나머지 명부도 한국에 제공할 것으로 보는가.
“아마 제공하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온 19종 명단이 제일 중요한 자료이기는 하다. 이것은 출항 직전과 직후에 만들어진 최초의 명단이다. 일본이 침몰 후에 만든 다른 명단은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에 맞춰 만들어진 자료라서 정확도가 떨어질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후생성에는 승선자 명부 외에도 600개가 넘는 우키시마호 관련 문서가 있다는 것을 취재하면서 알게 되었다. 침몰 뒤 배에 대한 조사, 유골 처리 등을 정리한 자료인데 진상 규명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승선자 명부 외에 이 관계 문서도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일본은 우키시마호 침몰의 원인이 미군의 기뢰 때문이라고 했지만, 유가족들은 일본군이 배 안에서 폭파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원인 규명 작업도 가능할까.
“우키시마호는 폭침으로 반으로 쪼개졌고, 한쪽은 1950년, 다른 한쪽은 53년 또는 54년에 인양되었다. 이 때가 사고 원인 규명의 가장 중요한 기회였다. 지금 그 부분과 관련된 자료 공개 요청을 하고 있다. 그 자료를 검토해보면 사고 원인을 좀 더 알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원래 일본 정부에 성실하게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79년 동안 그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의혹이 생기게 되었다.”
“일본 가해 역사 기록이 평생의 사명
우키시마호 관련 전시·기념관도 필요”
―현재 한일 정부는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미래 지향적 협력’을 해야한다며 과거사는 덮고 가자고 하고 있다.
“진정한 미래지향적 협력을 하려면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뢰는 지금처럼 과거를 없애거나 덮어버리는 것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직시하고 책임을 다해야만 신뢰가 생긴다. 표면적으로 한일 관계가 좋다고 연출하는 것은 대단히 공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일 모두에서 과거사에 대한 관심은 적어지고, 정치는 우경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과거를 직시해야만 전쟁에서 벌어진 그 나쁜 일들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려면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원폭과 대공습, 만주나 소련 억류자 등 일본이 당한 피해에 대한 기억들을 강조하고 계속 계승하지만, 가해의 역사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마이즈루항에도 만주 등에서 억류되었다가 돌아온 이들을 기념하는 번듯한 기념관이 있다. 하지만 우키시마호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앞으로는 그런 기념관에서 우키시마호와 관련된 전시를 하고 우키시마 기념관도 만들기를 바란다. 우키시마호 사건을 일본 사회에 제대로 알리는 일도 하고 싶다.”
글·사진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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