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속가능성 vs 행성의 거주가능성 [뉴스룸에서]

최원형 기자 2024. 9. 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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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월24일 아폴로8호 승무원 윌리엄 앤더스가 찍은 ‘지구돋이’ 사진. 지구가 인간의 유일한 삶터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으로 꼽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인도 출신 탈식민주의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76)는 인간의 역사를 서술할 때 등장하는 ‘지구화’(globalization)란 말에 들어 있는 ‘지구’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등 행성 차원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지구’가 같은 단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로부터 ‘지구’(globe)와 ‘행성’(planet), 나아가 ‘지구적인 것’(global)과 ‘행성적인 것’(planetary)을 구별해내는 그의 독특한 접근 방식이 나왔다. 2021년에 펴낸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는 이렇게 지구와 행성을 구별하는 사유를 기반으로 우리가 직면한 ‘인류세’의 문제를 숙고한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지구와 행성은 서로 다르다. 지구는 인간이 자신을 위해 일궈온 것, 말하자면 “인간중심적 구성물”이다. 인간은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다른 유한한 것들(‘환경’이라 부른다)을 지속가능(sustainable)하도록 관리하는 능력을 계발했고, 이를 토대로 문명이란 걸 발전시켜왔다. ‘지구화’에는 이주, 화석연료의 채굴과 사용, 식민주의, 자본주의 등 인간 문명이 밟아온 전체의 역사가 담겨 있다. 차크라바르티는 이런 ‘지구적인’ 사유가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핵심 용어로 ‘지속가능성’을 꼽는다.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을 지속가능성이라 정의한 바 있다. 풀이하자면, 지구란 인간이 대를 이어가며 자기 종(만)을 지속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실행해온 일종의 ‘생명정치’ 시스템이다.

반면 행성은 지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성을 척도로 삼는다. 지구는 46억년 전 태양계가 만들어질 때 갓 태어난 원시태양 주위의 엄청난 수의 미행성들이 충돌하고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행성이다. 수성·금성·화성처럼 밀도가 높은 암석형 행성으로, 태양계에서 세번째로 가깝게 태양을 돌고 있다. 탄생 당시 밀도 차이에 의해 핵과 맨틀이 분리됐고, 42억~40억년 전쯤엔 고온의 마그마 바다가 식으면서 얇은 지각이 형성됐다.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많은 양의 비로 쏟아져 내리며 38억년 전쯤에는 바다가 만들어졌다. 지구만의 특별한 조건들은 생명이 출현하는 배경이 됐다. 처음엔 무척 느렸던 생명의 진화 속도는 5억4200만년 전 캄브리아기 후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인간은 이 긴 계보의 한 끄트머리에 한 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을 따름이다.

지구적 사유가 ‘지속가능성’에 기댄다면, 행성적 사유의 핵심 용어는 ‘거주가능성’(habitability)이다. 지구라는 행성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존재해왔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이 거주적합성 문제의 중심이 아니라, 거주적합성이 인간의 존재에 중심적”이라는 사실이다. 행성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인간을 비롯한 생명계는 저 무심한 행성의 작동에 간신히 ‘기대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지구의 대기는 오랜 시간 동안 복잡한 생명계가 살아갈 수 있도록 적당한 수준의 대기 중 산소 비중을 유지해오고 있는데, 만약 행성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길 그친다면 인간은 물론 그 어떤 생명도 즉각 ‘거주가능성’을 잃게 된다.

현재 우리는 “지구적인 것과 행성적인 것이 마주치는 끝점”에 살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지구적 차원에서 벌여온 일들이 행성적 차원에까지 영향을 줘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기후변화가 단지 ‘인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라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 안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지표면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데에 만족하면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행성의 구별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인간중심적 이념은 거주적합성이라는 행성중심적 이념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행성적 차원에 눈감은 채 지구적 차원에서 벌여온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다면, 잘못은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지구공학’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류세’, ‘비인간’, ‘탈인간중심주의’ 같은 것들을 포괄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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