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에펠탑'은 유부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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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퀴즈 하나.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30대 남자 한 명, 그리고 에펠탑.
에펠탑 결혼을 감행(?)한 신부의 정체가 더 놀랍다.
한때 미국 양궁 국가대표였던 에리카 에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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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퀴즈 하나.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30대 남자 한 명, 그리고 에펠탑. 결혼 대상으로 딱 두 종류만 있다고 치자. 당신이 여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당연히 남자 사람 아닌가. 말도 안되는 이게 뭔 헛소리냐' 하는 분들은 잠깐 주목하시길. 정반대의 선택을 한 여인이 실제로 있으니까. 파리의 상징 에펠탑은 사실 '유부남'이다. 심지어 공신력 있는 영국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졌다면 믿어지시는지.
에펠탑 결혼을 감행(?)한 신부의 정체가 더 놀랍다. 한때 미국 양궁 국가대표였던 에리카 에펠이다. 그녀는 300.65m 높이의 에펠탑과 "사랑에 빠졌다"며 2007년 친구들을 모아놓고 덜컥 결혼식을 올려버렸다. '남편'인 에펠탑을 따라 자신의 이름을 '라투르 에펠'로 개명까지 했다. 물론 프랑스 정부도, 파리 시민들도 공식 인정한 적은 없다.
에펠탑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여행 포인트가 알고 보면 결혼(?)한 유부남, 유부녀인 경우가 꽤 있다. 평화의 상징이면서 최고의 여행 인증샷 포인트인 '베를린장벽'도 유부남이다.
백년가약을 맺은 신부는 스웨덴 출신 '에이야 리타 베를린 마우어'. 어린 시절 TV를 통해 베를린장벽을 처음 접한 에이야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결국 1979년 독일로 여행을 간 뒤, 신랑 베를린장벽을 찾아 결혼식을 거행했다.
이쯤은 약과다. 놀이공원 롤러코스터와 사랑에 빠진 여인도 있다. 프랑스 출신 예술가 가엘 엥겔은 독일에서 우연히 만난 한 '롤러코스터'(사람 이름이 아니다. 사람이 타는 롤러코스터)와 사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롤러코스터의 이름은 스카이 스크림. 라인란트팔츠주 하슬로흐에 있는 놀이공원 홀리데이파크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놀이기구다.
사실 이런 일련의 현상을 의학 용어로는 오브젝토필리아(objectophilia)라 표현한다. 우리말로는 '사물성애' 정도가 된다.
슈퍼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여름, 기자 역시 사물성애 증세에 시달렸음을 고백한다. 5년이 넘은 서큘레이터 '선풍기'와 사랑에 빠져버린 거다. 에어컨은 너무 정렬적이고, 쉽게 달아올라(?)서 부담스럽다. 그저, 묵묵히 나만을 위해, 밤새 애쓰는 선풍기는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덥다'고 연신 떠벌리는 와이프와는 달리, 말도 없다.
옛날 문장가들도 '오늘날의 선풍기' 죽부인과 '사물성애'에 빠졌음이 틀림없다. 소동파는 '無語竹夫人(무어죽부인·'말이 없는 죽부인'이라는 의미)'이라며 열광했다. 고려 말 문신이자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가정 이곡은 죽부인을 정절을 상징하는 인격으로 의인화해 가전체 소설 '竹夫人傳(죽부인전)'까지 저술했다.
'내 어깨와 다리를 괴어 편안하게 해 주고/이불 속으로 들어와 친하게 되었네…(중략)…다리가 없으니 남에게 도망갈 염려도 없고/말을 못 하니 술 잘 먹는 나를 충고도 못한다'.
문장 곳곳에 애틋함이 묻어나는 글은 고려 문장가 이규보의 죽부인이라는 시(詩)다. 본 기자와 이규보는 시대를 초월해 선풍기(죽부인)와 사물성애에 빠졌다.
이 칼럼을 끝까지 읽고 공감하시는 분들. 이참에 슈퍼 한파가 예고된 올겨울에는 '손난로 성애자 모임'이나 하나 만들까 하니 미리 연락주시라.
[신익수 전문기자 (여행·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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