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남일 같지 않은 독일산업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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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독일 뮌헨에 있는 BMW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독일의 자존심인 자동차 산업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동차뿐 아니라 독일 제조업 전반이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한국도 중국의 전방위 침공으로 산업 생태계 곳곳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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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경쟁력 저하로 경제 휘청
中 침공에 한국도 시간 문제
경쟁력 지켜낼 산업정책 있나
14년 전 독일 뮌헨에 있는 BMW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BMW는 '커넥티드 드라이브'라는 첨단 정보기술(IT) 서비스로 미래 기술을 주도했다. 시승해보니 식당, 주유소, 날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기능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스마트카였다.
독일의 자존심인 자동차 산업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기차 전환이 더딘 데다 중국의 매서운 추격,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고비용 충격 탓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독일 제조업 전반이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독일에 '유럽의 병자'라는 딱지까지 붙을 판이다.
독일은 한국이 외면해선 안될 반면교사다. 한국도 중국의 전방위 침공으로 산업 생태계 곳곳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석유화학과 철강 업종은 부진의 늪에 빠졌고, 전기차·배터리·로봇·가전 등 많은 산업군이 중국에 주도권을 뺏길 위험에 처했다. 제조업 신화가 깨지면 한국이 세계 선진 대열을 유지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나갈 때마다 한국 기업들의 활약상을 자주 언급한다고 한다. 나라 밖에 나가보면 대한민국 위상을 높이는 두 가지가 우리 기업과 K컬처다. 하지만 그 자랑스러운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으면 제조업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하루아침에 독일과 같은 병자 처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올해 3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많은 대기업들이 작년 영업손실로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냈다. 그 여파로 올해 15조원에 달하는 법인세 결손이 예상된다.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하락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전락한다면 한국 경제에는 재앙 같은 일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대기업 대표는 "미국과 일본도 현금이 넘쳐서 보조금을 주겠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라며 "기업 경쟁력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주요 산업을 싹쓸이할 날이 임박했다는 경고다.
조선업이 부활하고 반도체가 버티고 있으며 자동차는 세계 톱3 반열에 올랐는데 웬 호들갑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재계 인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다.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등 어깨를 짓누르는 규제로 기업 활력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한 기업들이 전력과 용수 문제로 쩔쩔매고 지방자치단체의 레드 테이프로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 떠밀릴 상황인데 우리 정부의 산업정책에는 절박함이 안 보인다. 대기업 특혜, 산업 편중론을 의식해서인지 밋밋한 정책의 나열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인구문제에 대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국가 소멸까지 우려해야 할 정도로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저출생병을 치유할 골든타임을 놓친 느낌이다. 산업 경쟁력의 추락 위기를 해결할 골든타임도 이미 놓쳤는지 모른다. 한국 산업이 무너져 응급실에 실려온 뒤에야 극약 처방을 취한다면 그땐 너무 늦은 것이다.
독일 정부도 자국 자동차 기업들의 절규에 못 이겨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재검토할 태세지만 단기 처방에 그칠 공산이 크다. 거목이 쓰러지기 전에 병충해에 대비하고 거름도 미리 줘야 하는 법이다.
세계가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취하는 조치는 가관이다. 기존 교역질서를 깨고 관세 장벽을 높이는가 하면 대규모 보조금, 반독점 심사, 자국 부품 의무 사용 등 온갖 견제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어떤 자세로 국제 시합에 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산업이 무너진 뒤에야 사후약방문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황인혁 지식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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