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때릴수록 MBC의 신뢰는 높아진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사들은 1년에 몇차례씩 ‘성적표’를 받는다. 연례 신뢰도 조사 결과다. 신뢰도가 올라갔다고 해서 신문이 잘 팔리거나 매출이 느는 것도 아니지만, 언론사 처지에선 꽤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성적이 좋은 언론사들은 자사 지면이나 방송을 통해 대놓고 자랑을 하기도 한다. 신뢰도 조사 결과는 뉴스 소비자(독자)들의 평가라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일만은 아니다.
올해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낸 곳은 문화방송(MBC)이다. 문화방송은 9월 초 발표된 시사주간지 시사인(IN)의 신뢰도 조사(한국갤럽)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1위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25.3%가 문화방송을 꼽았다. 지난해보다 6.6%포인트나 높아진 수치다. 2위인 한국방송(KBS)은 8.5%에 그쳤다. ‘압도적인 1위’라 할 만하다.
이뿐 아니다. 문화방송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실시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한국갤럽)에서도 ‘3관왕’을 차지했다. 이 조사는 전문가와 일반 국민으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두 그룹 모두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가장 열독하는 언론매체’로 문화방송을 첫손에 꼽았다. 한국기자협회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벌이는 신뢰도 조사(마크로밀엠브레인)에서도 문화방송이 연합뉴스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문화방송의 약진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건 한국방송의 추락이다. 시사인 조사에서 2021~2022년 내리 신뢰도 1위를 기록했던 한국방송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문화방송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로 한국방송을 꼽은 비율은 지난해 14.2%에서 올해는 8.5%로 급락했다. 1위인 문화방송과의 격차도 1년 새 4.5%포인트에서 16.8%포인트로 커졌다. 한국방송은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1년 새 신뢰도가 10%포인트가량 하락했다. 기자협회 조사에선 아예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한국방송의 신뢰도 하락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윤석열 정권이 임기가 남은 전임 사장을 우격다짐으로 찍어내고 그 자리에 ‘친윤 낙하산’ 박민 사장을 내리꽂은 뒤 한국방송은 하루하루 ‘땡윤방송’의 흑역사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공영방송이라는 말이 민망할 지경이다. 오죽하면 한국방송 기자 91%가 ‘자사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여기겠는가.(한국방송 기자협회 설문조사)
그렇다면 문화방송의 신뢰도 상승은 어떻게 봐야 할까. 언론(또는 뉴스) 신뢰도의 성격에 대해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 연구자들은 언론 신뢰도를 신뢰 주체(독자)와 대상(언론사) 사이의 ‘관계적 개념’으로 본다. 신뢰도에는 개별 언론사 차원의 노력 못지않게 뉴스 수용자들의 태도나 주관적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믿어주는 이들의 존재가 신뢰도 향상에 필수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문화방송의 신뢰도가 급상승한 것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문화방송이 정권 교체 이후 신뢰도 제고에 유달리 더 노력을 쏟은 것 같지는 않다. 언론의 책무인 권력 감시 보도를 변함없이 해왔을 뿐이다. 문화방송을 ‘가장 믿을 만한’ 언론으로 밀어올린 것은 정권 차원의 핍박이다. 2022년 9월 문화방송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비속어 발언을 처음 보도한 이후, 문화방송은 윤석열 정권의 전방위 탄압에 시달렸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민형사 소송, 기자 압수수색,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대급 법정제재….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문화방송 기자에게 했다는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 발언은 상징적이다.
이런 상황이니 국민들이 권력과 맞서다 탄압을 받는 문화방송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 아닌가. 한국방송이 ‘권력의 애완견’으로 전락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국 ‘신뢰도 1위’ 문화방송을 키운 것은 8할이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 폭주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선호도 조사 방식으로 언론 신뢰도를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한편으론 언론 신뢰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딱히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신뢰도는 언론 환경, 특히 정치와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의 삶이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상,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론에 기대하는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정 언론에 대한 신뢰 여부는 민심의 반영이라고 봐야 한다. 신뢰란 결국 ‘믿고자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은 언론의 손목을 비틀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면 지지율이 올라갈 거라고 믿는 듯하다. 망상일 뿐이다. 역사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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