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에서 피어난 환상과 예술혼...토니상 2인극 ‘사운드 인사이드’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9. 3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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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한밤의 눈밭에 한 남자가 객석을 등지고 서있다.

여자는 무대의 한쪽 구석에서 노트북을 펴고 소설을 쓴다.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 소설의 인물에 자아를 투영한다는 것, 오랜 기간 축적한 고독을 인물에 녹여내고 소설 속에서 생동하는 인물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는 것을 연극은 암시한다.

창작이 부진한 고독한 주인공이 의미심장한 사건을 겪은 뒤 소설을 집필하는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각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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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상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
문소리·이현우·이석준 등 출연
10월2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한 장면. 라이브러리컴퍼니
아무도 없는 한밤의 눈밭에 한 남자가 객석을 등지고 서있다. 여자는 무대의 한쪽 구석에서 노트북을 펴고 소설을 쓴다. 눈으로 만들어진 듯 미동 없이 선 남자가 창작의 원동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2020 토니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2인극 ‘사운드 인사이드’가 한국에서 라이센스 공연(연출 박천휴)으로 관객을 맞고 있다.

예일대 문예창작 교수 벨라(문소리·서재희)의 사무실에 감수성 높은 신입생 크리스토퍼(이현우·강승호·이석준)가 방문한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내던 벨라는 오래 전 자신이 발표한 소설을 좋아하고, 스스로도 현재 소설을 쓰고 있다는 크리스토퍼에게 마음을 연다.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한 장면. 라이브러리컴퍼니
‘사운드 인사이드’를 관통하는 소재는 소설이다. 크리스토퍼가 쓰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은 예일대 신입생이라는 신분, 출신 지역과 가정 환경 등 크리스토퍼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벨라가 17년 전 쓴 소설의 주인공 역시 벨라와 닮았다.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 소설의 인물에 자아를 투영한다는 것, 오랜 기간 축적한 고독을 인물에 녹여내고 소설 속에서 생동하는 인물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는 것을 연극은 암시한다.

크리스토퍼의 소설이 완성되고 벨라가 크리스토퍼에게 극단적 제안을 하면서 연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현실과 소설이 섞이고 인물 간 관계가 모호해진다. 지난 17년간 소설을 쓰지 못했던 벨라는 크리스토퍼와의 충격적 사건을 겪은 뒤 마침내 노트북 앞에 앉아 집필을 시작한다.

‘사운드 인사이드’는 벨라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벨라는 크리스토퍼와 대화하다 시시때때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 관객에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직접 전달한다. 관객은 공연 내내 벨라의 심리와 밀착된 상태에서, 벨라의 시선으로 극중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크리스토퍼가 무대 중앙에서 자신의 소설에 대해 설명할 때는 그를 둘러싼 나머지 무대가 회전하고 마치 공전하는 행성처럼 벨라가 크리스토퍼를 맴돌며 그의 내면을 뜯어보는 모습이 연출된다.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한 장면. 라이브러리컴퍼니
연극을 보고 나면 크리스토퍼가 벨라의 고독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좀처럼 써지지 않는 소설에서 벨라가 창조해내지 못한 인물, 외로움에 사무치다 못해 스스로 만들어낸 친구처럼 느껴진다. 고독한 생활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던 벨라가 불현듯 내면의 소리(사운드 인사이드)에 귀기울이라며 길게 절규하는 장면은 그녀의 외로움을 절절히 드러낸다.

창작이 부진한 고독한 주인공이 의미심장한 사건을 겪은 뒤 소설을 집필하는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각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과 닮았다. “고독의 성장은 소년들의 성장처럼 고통스러우며 막 시작되는 봄처럼 슬프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도 떠오른다. 10월2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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