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실종, 미래를 보다 [6411의 목소리]
김백산 | 기후소송 원고
2년 전 여름 서울에 하루 만에 400㎜ 가까이 폭우가 내렸을 때 강남역 일대는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부근을 지나다 도로 침수를 막기 위해 열어둔 배수구 구멍에 빠졌다. 몸에 상처가 많이 났고, 휴대폰도 망가졌다. 폭우에 뚜껑이 열린 맨홀 때문에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분도 계셨다. 기후위기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재난으로 닥칠 수 있고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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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기후변화로 수십년 내에 전세계의 식량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 남짓이고 사료용 곡물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0% 이하로,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은 밀, 옥수수, 콩으로 만든 가공식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 됐다. 더군다나 육류 소비가 늘어나 사료용 곡물 수입도 확대되고 있다. 조천호 박사는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며칠 전 식당에 갔더니 뜨거워진 바닷물 때문에 ‘가을 전어’를 들여놓을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커피 원두의 재배 환경이 점점 악화하여 커피 가격이 오르고 있고, 심지어 2080년에는 원두 자체가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 원두를 개발하고 있는데, 미래의 커피에는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번 추석에 배추 한포기에 2만원, 시금치 한단에 만원에 파는 곳도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미래일까? 기후재난과 식량 안보 위기 등 기후위기와 우리 청년세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지금 겪고 있는 기후위기는 이미 수십년 동안 내뿜은 온실가스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기후변화에 기여했다. 편하자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텀블러를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개인이 아무리 탄소 저감을 위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거대 기업이나 국가 단위의 탄소배출을 상쇄할 만큼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에서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0년 이후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탄소배출 저감 정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최고 사법기관 중 하나인 헌법재판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헌재 결정이 내려졌다고 기후위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의 탄소 저감 정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니 국회는 더욱 강력한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해야 하고,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도 개선해야 한다.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 위헌소송 청구인인 한제아님은 헌법재판소 공개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추석 폭염에 모두 놀라고 있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열대기후 속 한국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계절의 실종은 잦은 재난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삶이 훨씬 더 가혹해질 수 있다. 오염을 제거하는 데는 비용이 따른다. 바다에는 인류가 버린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이 가득하고, 우리가 먹는 모든 해산물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탄소배출도 마찬가지다. 탄소배출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을 넘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당장에 즉각적인 성과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어렵다. 이 보장되지 않는 노력을 오랜 기간 지속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 나오듯이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 이것은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의 중요한 특성이다.” 과거 무분별하게 배출된 온실가스로 현재 이미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것에 대하여, 청년으로서 미래를 바라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고 싶다. 기후대응을 위한 법과 정책의 개선을 위하여 나도 이번 기후소송에 참여했다. 그러나 부족함을 느끼며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게는 제도 개선에서, 작게는 일상생활의 실천까지.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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