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가 무려 2300만 광년…우주 최대 구조물 발견

곽노필 기자 2024. 9. 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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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75억광년 거리 블랙홀이 분출하는 제트
우리 은하 140개를 이어붙인 것과 같아
우주 나이가 지금의 약 절반이었을 무렵인 75억광년 거리에서 발견한 2300만광년 크기의 블랙홀 제트를 묘사한 그림. 역대 가장 큰 규모의 블랙홀 제트다. 캘리포니아공대 제공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초고밀도 천체 블랙홀은 그 강력한 중력의 힘으로 주변의 물질을 한없이 먹어치운다.

그러나 블랙홀이라고 해서 모든 물질을 삼켜버리는 건 아니다. 일부는 나선형으로 회전하면서 블랙홀 주위에 강착원반을 만들고, 또 다른 일부는 블랙홀의 강력한 자기장과 어우러지면서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돼 블랙홀 회전축을 따라 양쪽으로 뿜어져 나간다. 이를 블랙홀 제트라고 한다. 블랙홀 제트에선 전파, 엑스선, 감마선 등 다양한 파장의 빛이 방출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가 중심이 된 국제 공동연구진이 지금까지 관측한 것 가운데 가장 큰 블랙홀 제트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블랙홀의 총 길이는 2300만광년으로, 우리 은하 140개를 이어놓은 것과 같다고 밝혔다. 우리 은하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10만광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진은 16만광년으로 계산했다. 연구진은 이메일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우리 은하의 크기는 은하의 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우주 나이가 지금의 약 절반이었을 무렵인 75억광년 거리에서 발견한 2300만광년 크기의 블랙홀 제트를 묘사한 그림. 역대 가장 큰 규모의 블랙홀 제트다. 캘리포니아공대 제공

연구진의 일원인 영국 허트포드셔대 마틴 하드캐슬 교수는 “제트를 하나의 사물로 본다면 이번에 발견한 것은 우리가 우주에서 알고 있는 가장 큰 물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역대 가장 큰 이 우주 구조물에 포르피리온이란 이름을 붙였다. 포르피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이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22년에 발견된 블랙홀 제트 알키오네우스였다. 지구에서 9300만광년 떨어진 NGC2663 은하의 중심 블랙홀에서 분출되는 알키오네우스의 크기는 1600만광년이다. 천문학자들은 알키오네우스가 블랙홀 제트의 한계치일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발견으로 이는 잘못된 생각임이 드러났다.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한 2300만광년 크기의 블랙홀 제트 구조. 블랙홀을 품은 은하는 사진 중앙에 있다. 크기 비교를 위해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우리 은하를 표시했다. 캘리포니아공대 제공

태양 수조배의 에너지 분출

연구진은 블랙홀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이 거대한 우주 제트는 우리 우주가 지금 나이의 절반이 채 안 되는 63억년 됐을 때의 것으로, 태양의 수조배에 이르는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18년 연구진이 은하 사이의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필라멘트들로 이뤄진 우주망을 연구하던 중 시작됐다. 우주망의 필라멘트 구조는 은하를 중력으로 묶는 암흑 물질, 필라멘트들이 만나는 은하단의 중심, 필라멘트 사이의 거대한 공극(빈 공간)으로 구성된 거대한 시스템이다.

연구진은 유럽우주국의 전파망원경 네트워크인 로파(LOFAR)를 이용해 필라멘트를 추적하던 중 깜짝 놀랄 만큼 긴 제트를 여럿 발견했다. 로파는 유럽 각지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것으로 지름이 1000㎞에 이르는 거대한 전파망원경 시스템을 말한다.

연구진은 인도와 미국 전파망원경, 하와이 천문대의 추가 관측을 통해 포르피리온의 본거지 은하는 우리 은하보다 약 10배 더 크며 지구에서 75억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하드캐슬 교수는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에서 제트가 분출된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포르피리온은 역대 가장 크고 강력하며 현재 우주 나이의 절반에 불과했을 시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고 말했다.

유럽우주국의 전파망원경 네트워크인 로파(LOFAR)의 중심부인 네덜란드 관측소. 캘리포니아공대 제공

블랙홀 제트가 우주 진화에 끼친 영향은?

포르피리온의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지금보다 밀도가 7~15배 더 높은 당시에 우주의 다양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한 직선 형태로 뻗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추후 연구 과제다.

하드캐슬 교수는 “초대질량 블랙홀 주변에서 10억년 이상 안정적으로 강착 원반을 만드는 활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며 “이렇게 거대한 제트를 생성하려면 이 기간 동안 매년 태양 질량에 해당하는 물질을 꾸준히 섭취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의 계산에 따르면 포르피리온의 제트 길이는 당시 포르피리온이 있던 우주 공극 반지름의 약 66%에 이른다.

연구진은 은하를 넘어 우주의 거대한 빈 공간에까지 뻗어나간 제트는 초기 우주의 은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연구진의 일원인 캘리포니아공대 조지 조르고프스키 교수는 “은하와 그 중심에 있는 블랙홀은 공진화한다”며 “이는 제트가 모은하와 그 주변의 다른 은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에너지를 퍼뜨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트는 은하 사이의 광활한 우주에 우주선과 열, 중원자(수소 이외의 원자), 자기장을 퍼뜨린다. 연구진은 다음 과제로 이런 거대 제트가 주변 은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연구진은 특히 자기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하드캐슬 교수는 “블랙홀의 제트는 매우 작은 규모에서 매우 큰 규모로 자기장을 전달하는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논문 제1저자인 마르틴 오에이 박사후연구원은 “우리 지구의 자기장은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도록 보호해준다”며 “우리는 자력이 우주망에 스며들어 은하와 별, 그리고 행성으로 이동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거대한 제트가 우주 전체에 자력을 퍼뜨렸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86-024-07879-y
Black hole jets on the scale of the cosmic web.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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