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문학상] 심사위원단 "중심서사 안정적…소소한 재미에 비애감까지"
(서울=연합뉴스) 올해 응모작은 181편으로, 전체적인 작품 수준은 고르고 높았다. 한 달여간의 예심 기간을 거친 뒤 본심에 오른 작품은 '드래그 헌팅', '스웨덴식 레시피', '목동자리 보이드', '호모', '쇼는 없다'로 총 다섯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한 달간의 숙독 과정을 가지고 9월 초 수림큐브 사무실에서 본심 회의를 가졌다. 본심에 오른 다섯 편의 소설 모두 일정한 수준을 갖추고 있었으며, 저마다의 장단점이 뚜렷해 긴 시간 논의가 이어졌다.
우선 '드래그 헌팅'은 이민국에 대한 소재가 신선했으며, 근래에 보기 드문 서사라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다만 소재와 주제 면에서 문학상 수상작으로 적당한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스웨덴식 레시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과, 음식에 대해서 세밀하게 묘사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시시콜콜한 묘사가 장황하게 이어지고, 스웨덴 남자와의 관계가 지나치게 형식적인 점, 인간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인 점, 소설적 재구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목동자리 보이드'의 경우 문장이 안정되어 있고, 작가가 이야기를 꾸려가는 능력이 있었다. 양자역학과 서양사 그림들에 대한 소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된 점도 좋았다. 그러나 보험조사원과 강선영 캐릭터 사이의 관계가 도식적으로 다가오고, 쌍둥이 남매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잘 짜인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전개 과정이 인위적이라면 독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집중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작품은 '호모'와 '쇼는 없다' 두 편이었다.
'호모'의 경우 제목에서는 별다른 기대감이 들지 않았으나, 거듭해 읽을수록 좋은 작품이었다.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읽혔다. 근래에 보기 드문 두터운 소설이며, 갈피마다 담긴 철학적 사유와 성찰이 훌륭해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작가가 요즘 소설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도 들었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아는 작가라는 것은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철학적 성찰이 다소 뻔해서 지루한 면이 있었다. 작가가 이야기란 얼마나 윤리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압박을 가지고 집필하지 않았나 싶다. 상황 설정이 기발하기에 뒷부분이 궁금해질 법도 한데, 뒤로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는 점도 아쉬웠다. 인류학에 대해서도 정교하게 조사해 자기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웠고, 외형만 빌려와서 자기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어 아쉬웠다.
'쇼는 없다'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핼러윈이라는 시간적 배경, 프로 레슬링이라는 소재를 적재적소에 설정한 작품으로, 작가가 소설을 많이 써본 사람이라는 확신을 줬다. 헐크 호건, 워리어, 민 진, 빈스 맥마흔 등 프로 레슬링 세계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중심 서사가 굉장히 안정적이며, 기술적으로 돋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프로 레슬러와 록밴드 기타리스트, 팝페라 가수 등 한때는 명성을 떨치던 인물들이 소설 안에서는 후줄근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점도 재미있다. 작가가 다양한 재치와 패러디를 보여주며 소소한 재미를 던져주는 능력이 돋보였다. 더불어 그 속에서 비애감을 끌어내는 재능 또한 탁월했다. 자신 있게 무대 위로 등판하지 못하거나 자기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장점이며, 소설의 전체적인 톤과 강약 조절을 잘 해나간 점도 훌륭했다.
'호모', '쇼는 없다'를 두고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길게 이루어졌다. '호모'에 쓰인 기발한 설정과 철학적 성찰은 장차 한국 문학의 든든한 받침이 되어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고, '쇼는 없다'가 가진 능숙함과 재치는 보다 많은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쇼는 없다'의 탄탄한 서사와 재치 그리고 완성도에 심사위원단의 의견이 기울며, 길고도 즐거운 심사를 마무리 지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전한다.
▲ 2024 수림문학상 심사위원단 = 성석제(소설가. 심사위원장), 정홍수(문학평론가), 신수정(문학평론가), 양진채(소설가), 김혜나(소설가. 심사평 대표집필), 김의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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