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약속 지키지 못해서…" 류현진도 코끝이 찡했다, 정우람의 끝내 이루지 못한 꿈
[OSEN=대전, 이상학 기자] “현진이가 왔으면 좋겠는데…”
지난 2월1일이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플레잉코치가 된 정우람(39)은 서산 잔류군에 남아 새 시즌을 준비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류현진(37)의 이름이 나왔다. 당시까지 FA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오퍼를 받고 있던 류현진은 거취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우람은 “현진이가 오면 우리 팀도 판이 바뀔 것이다. 현진이가 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현진이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주의 시간이 흘러 류현진은 진짜로 한화에 왔다. 8년 총액 170억원에 계약하면서 12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류현진의 복귀는 한화의 팀 전력 면에서도 엄청난 플러스였지만 정우람 개인적으로도 기대한 것이 있었다. 4년 전 약속 때문이었다. 2019년 시즌이 끝난 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FA 계약을 맺은 류현진은 정우람에게 “형, 4년만 버티고 있어. 나랑 같이 하자”라고 말했다. 토론토와 계약이 끝나는대로 한화에 돌아갈 테니 같이 선수 생활하자는 의미. 당시에도 정우람은 35세로 나이가 꽤 있는 편이었다.
두 선수는 이전에 같은 팀에서 함께한 인연이 없었다. 류현진이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전 한화에서 뛸 때 정우람은 SK 선수였다. 하지만 정우람이 2015년 시즌을 마치고 한화로 FA 이적한 뒤 후배들과 비시즌마다 해외 개인 캠프를 갔고, 그때 만난 류현진과 가까워졌다.
류현진은 4년 전 약속을 지켰지만 정우람이 어겼다. 올해 플레잉코치로 계약했지만 서산 잔류군 투수코치를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는데 집중했다. 틈틈이 개인 훈련했지만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지난 15일 현역 은퇴를 결정했고, 29일 은퇴 경기가 되어서야 대전에서 류현진과 만났다.
정우람은 이날 NC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5번째 경기를 데뷔 첫 선발투수로 나섰다. NC 1번 타자 최정원에게 4구째 직구를 맞아 우전 안타를 허용하면서 21년 프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관중들의 큰 박수와 환호 속에 마운드를 내려온 정우람은 덕아웃에서 반긴 류현진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미소를 지었다.
경기 후 열린 정우람 은퇴식에서 여러 선수들의 영상 편지가 전광판을 통해 나왔다. 그 중 류현진도 있었다. “우람이형. 꼭 형이랑 같이 하고 싶어 돌아왔는데 형이 약속을 어기고 말았네요. 같은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선수로서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고, 제2의 인생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정우람도 은퇴사에서 류현진을 언급했다. 한화 후배 선수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한 정우람은 마지막으로 류현진의 이름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현진아. 대한민국 에이스이자 누구보다 한화를 사랑하는 너와 함께 뛰어보지 못해 너무 아쉽다. 4년 전 같이 꼭 뛰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훗날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류현진도 코끝이 찡했는지 눈가가 촉촉해진 모습이었다. 정우람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더욱 더 준비하고, 동료들을 챙기는 너의 모습을 보니 역시 존경받을 선수라는 것을 느낀다. 오랫동안 이글스 팬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야구했으면 좋겠다. 올 시즌 멋있었고, 수고 많았다”라고 격려했다. 류현진도 정우람을 향해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 박수를 치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정우람은 은퇴식 내내 눈물을 계속 흘렸다. 며칠 전부터 은퇴사를 준비하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날 경기 전 은퇴 기자회견 때도 울컥하며 말을 쉽게 잇지 못한 정우람은 “2016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대전에 왔다. 9년 동안 한화팬분들을 많이 기쁘게 해드리지 못해서…많은 사랑만 받고 떠나는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9년간 가을야구를 한 번(2018년)밖에 가지 못한 것을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비록 선수로서 인생은 끝났지만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한화에서 정식 코치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김경문 한화 감독도 이날 정우람에 대해 “1005경기, 많이 나왔다. 몸 관리를 얼마나 잘한 건가. 대단한 것이다”며 “이렇게 은퇴식을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얼마나 선수 생활을 열심히 잘해왔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 코치도 하고 있는데 좋은 후배들을 많이 길러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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