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전하는 두 종류의 고백 앞에서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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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다 보면 어렴풋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취재원이 무슨 동기에서 입을 열고 있는지, 왜 굳이 시간을 내서 일면식도 없던 기자에게 '소재거리'를 주고 있는지.
"누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겠어요.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취재원도 기자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런 순간을 독자와도 나누고 싶어, 사진 찍는 기자에게 페이지를 넉넉히 주고 '긴 인터뷰 기사도 써보자'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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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다 보면 어렴풋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취재원이 무슨 동기에서 입을 열고 있는지, 왜 굳이 시간을 내서 일면식도 없던 기자에게 ‘소재거리’를 주고 있는지. 어떤 이들에게서는 불순한 의도가 감지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진솔함과 사명감이 전해지기도 한다.
전자의 취재원은 대개 인터뷰를 끝내고 수첩을 접을 즈음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기자에게 묻는다. “어때요, 제 얘기 좀 쓸 만하겠어요?” 반면 후자의 취재원은 눈가가 살짝 젖은 채 기자를 바라보며 인사한다.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호 〈시사IN〉에는 두 가지 종류의 ‘고백’을 담았다. 하나는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한 인터넷 매체 기자와 전화로 나눈 대화 내용이다. 그는 서로가 지닌 정계 정보를 확인하고, 총선 후보 공천 탈락에 대한 불만 등을 늘어놓다가, 문득 자신이 대통령실 재직 시절 보수 시민단체를 시켜서 정부 비판 보도를 하는 언론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도록 했다는 취지의 고백을 한다. 녹음파일 속 말들 중에서 어디까지가 진실된 고백이고 어디서부터 과장이고 허세인지 완벽히 가리기는 쉽지 않지만, 공동취재팀의 취재 결과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부적절한 방식을 동원해 비판 언론에 재갈 물리기를 시도한 정황들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또 하나의 고백은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서로 맞고 때리는 아동 인권유린의 현장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이제 노인이 된 그들은, 기자 앞에서 어린 시절 고통의 기억들을 꺼내며 아직 끝나지 않은 국가 폭력의 책임을 묻는다. 박미소 기자가 담아온 피해 생존자 다섯 명의 주름진 얼굴 사진 속에서 열세 살, 열 살, 여덟 살, 다섯 살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 작은 애들을 데려다가 강제노역 시키고, 때리고, 어떻게 그런 짓을 했을까. 국가가 책임져야 해요. 우리한테 사과해야 해요”라는 피해 생존자 김혁원씨의 말이 가슴에 아프게 꽂힌다.
두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기자에게 꺼내놓는 말들을 읽으며 세상이 언론에 기대하는, 또 마땅히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기자와 언론은 활용하고 장악해야 할 도구로 전락해버렸지만, 아직 어떤 곳에선 중요하지만 묻혀 있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로서도 그 공익적 쓸모가 분명히 남아 있다. 한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는 인터뷰를 마친 뒤 박미소 기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누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겠어요.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취재원도 기자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런 순간을 독자와도 나누고 싶어, 사진 찍는 기자에게 페이지를 넉넉히 주고 ‘긴 인터뷰 기사도 써보자’ 권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 그 결과물을 실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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