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성장 없는 세상’에 적응해야”

류이근 기자 2024. 9. 30. 06:0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축소되는 세계’ 쓴 앨런 말라흐 인터뷰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모습. 연합뉴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인구는 대략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5분의 1수준이지만, 당시로선 인구 과잉을 걱정할 만큼 번성했다. ‘적정 인구’를 놓고 그 시대 사상가들의 고민도 이어졌다.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가운데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인 도시의 인구를 고정된 하나의 숫자로 못 박지 않고 최소, 최대치의 범위로 접근했다. 그 수단으로는 이 시대 동의할 수 없는 산아 제한과 결혼 적령기 등을 거론하지만, 법과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풍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자족이 가능한 도시를 ’위대한 도시’로 봤다.

그는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에서 인구 문제를 다루면서 “위대한 도시는 인구가 많은 도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인구가 주는 도시를 실패한 도시로 보려는 21세기에 도시계획 전문가인 앨런 말라흐 미 커뮤니티 프로그레스 센터 수석연구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소환했다. 말라흐는 자신이 쓴 책(축소되는 세계)에서 2300년 전 철학자의 말을 ‘인구든 경제든, 성장은 끝났다’는 다소 격한 제목을 단 장에서 머리글로 걸어놨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시대를 맞이한 지금, 말라흐는 인구 증가를 바탕에 깐 성장 지상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삶의 질에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삶의 질은 두 사람의 수천 년 간극을 잇는 고리처럼 보인다.

말라흐는 다음 달 24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해 기조 연사로 나선다. 도시란 공간을 중심에 놓고서 인구 문제를 다뤄온 그는 포럼에서 “축소되는 인구,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다’라는 제목 아래 언론인 손석희씨와 특별대담을 한다. 지난 12일 화상으로 그를 미리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 시작부터 단호했다.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만이 아니라 이미 많은 나라에서 인구가 준다.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대체출산율(2.1) 수준을 밑도는 나라가 전 세계의 절반에 이른다고 한다. 그가 인구 감소를 되돌릴 수 없다고 보는 까닭은 물질적 번영, 도시화로 높아진 양육 비용, 저렴하고 효과적인 피임, 높아진 여성의 교육과 일자리 참여 등 익히 알려진 이유다. 실제 세계 인구는 50년 뒤쯤 약 100억 명에서 정점을 찍고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축소되는 세계’를 펴낸 앨런 말라흐가 지난 12일 화상으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줌 갈무리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에서 인구 감소가 “큰 도전”이라는 데 그도 이견은 없다. 다만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면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 데도 왜 출생률은 꾸준히 줄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는 불가피하다. 먼저는 이걸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왜 저출생 대책이 성공하지 못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인구 감소를 멈추는 것은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요인을 파악해 성공적으로 대처한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일본과 같은 출산율(1.2)을 넘어서긴 어렵다고 봤다. 한국이 대체출산율을 회복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했다. 그는 가족 구조, 경쟁 사회, 과도한 교육열 등으로 인한 높은 양육 비용, 가부장적 전통 등 한국만의 특수한 요인을 바꾼다면 출생률이 다소 올라갈 수 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재정적 지원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가족 구조와 문화 등 사회적 가치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모범 사례로 꼽혀온 스웨덴이 지금의 가족 및 사회 구조를 이루기까지 100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게 주제넘은 일이라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인구 감소를 되돌릴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인구가 감소하는 사회와 경제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더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서 지속해서 교류해온 일본 지방정부를 예로 들었다. “일부 일본 지방정부에서는 인구 감소를 되돌리려는 노력에서 감소를 관리하려는 노력으로 개념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가 말하는 축소되는 세계에 적응한다는 게 뭘까? 전례 없는 일이기에 답을 말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어 인구 감소에 직면한 한국이 탈세계화 추세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삶의 질 향상을 말한다. 특히 교통과 열린 공간, 문화적 기회 제공 등 ‘공공재’(공동으로 이용 가능한 시민 서비스)를 확장하고, 개별 도시들이 소규모 제조업에 집중하고 공급망을 현지화하는 것을 예시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정리했다. “중요한 것은 대규모 경제 성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삶의 질과 공공재에 초점을 맞춘 지역화한 커뮤니티를 더 강하게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러한 변화를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도시 계획 전문가이기도 한 그에게 현 정부의 3대 저출생 대책 가운데 하나인 주거 지원정책의 효과를 묻자, 회의적이었다. “출산율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효과가 있더라도 매우 작거나 일시적일 것이다”. 다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으로 주거 비용을 낮추는 건 출산율과 상관없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회를 위해 정부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지방소멸 위험과 함께 진행되는 인구 감소에 그는 참고할만한 도시를 하나 예로 들었다. 독일 루르 지역에 있는 도르트문트다. 대표적인 산업 도시 중 하나로 번창하던 이 도시는 석탄 및 철강 산업의 쇠퇴와 맞물려 빠르게 쇠락하기 시작했다. 한때 64만이 넘던 인구는 지속해서 줄어 1980년대 중반 57만까지 떨어졌다. 이후 감소세를 멈추고 살짝 반등한 인구는 지금은 약 60만명이다. 문을 닫은 제철소 등 노후산업단지를 재개발하는 ‘피닉스 프로젝트’는 도시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미국 속담에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말이 있다. 주택과 사무실의 공실, 노후 산업단지 등을 커뮤니티의 이점으로 바꿔낼 수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이후 세계 평균 출산율(TFR)과 한국의 출산율 추이. 세계은행 데이터 갈무리

축소되는 도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을 제외하면 많은 도시에서 빠르게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런데 말라흐는 인구 감소란 ‘레몬’이 계기와 기회가 되어 ‘레모네이드’ 즉 번성하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장기적인 인구 감소를 겪은 미국과 유럽의 일부 도시들 가운데 친환경 도시로 거듭나거나 열린 공간의 확대와 나무 캐노피를 늘리는 등 삶의 질 측면에서 여러 가치 있는 실험들을 해왔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기회와 계기를 찾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줄어드는 인구에 맞춰 도시의 운영 방식만이 아니라 공적 서비스 대상과 제공 방식, 재원 조달 방법 등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 과정에서 도시 간 인구 감소를 반전시키려는 노력이 자칫 ‘제로섬 게임’(한쪽이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한쪽은 하나를 잃게 됨)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데 한쪽의 인구 점유율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의 점유율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는 양적 인구 경쟁이 아니라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질은 인구 감소의 불가피성과 함께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내용이다. “미국의 경험을 보더라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인 조치를 성공적으로 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몇 명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꾸준한 흐름을 이어가긴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일자리나 문화적 기회를 제공하거나 젊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사회적 환경을 갖춘다면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삶의 질이 높은 곳,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각 도시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보다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들을 위한 기회를 잘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그는 인구 증가를 전제로 한 양적 성장(GDP)에 사로잡힌 사고의 전환을 주문했다. “성장이 곧 성공, 쇠퇴나 축소가 곧 실패라는 생각은 미국과 유럽의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구 궤적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런 생각은 자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사고 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도시 인구 규모를 놓고서 한 고대 철학자의 고민을 말라흐는 삶의 질의 문제로 더욱 분명히 표현했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김효진 보조연구원

앨런 말라흐는 누구?

지난 1월 그가 쓴 ’축소되는 세계’가 우리말로 옮겨지면서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도시 계획 전문가다. 미 예일대를 졸업한 뒤 뉴저지 트렌턴의 주택 및 경제 개발 책임자를 지냈고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비영리 도시재생 단체인 미 커뮤니티 프로그레스 센터의 수석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 유럽,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 대학에서 강연을 해왔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