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재정 신속 집행’… “경기 변동성 완화는커녕 키우기도” 지적

세종=박소정 기자 2024. 9. 3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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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처 “경제·재정 여건 고려한 上 조기집행 필요”
2002년 이후 상반기 재정 집행 목표·실적 ‘우상향’
“上低下高 전망 때 경기 대응 기대… 실상은 글쎄”
“‘세수결손’ 땐 한은 일시차입 등 비용발생 문제도”

정부가 경기 부진에 대응한다며 매년 ‘상반기 재정 신속 집행’을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경제·재정 여건을 고려해 이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재정 전문 기관의 지적이 나왔다. 경기 변동성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우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작년과 올해처럼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하는 상황에선 신속 집행이 재정 운용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3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지난 10일 발간한 ‘재정동향&이슈’를 통해 “상반기 국세수입 실적 등 경제·재정 여건을 고려한 신속 집행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박소정 기자

정부는 연초마다 ‘상반기 신속 집행 최고 수준’ 목표를 앞세우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경기가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으로 전망된다”는 이유로 신속 집행을 하겠다고 했고, 올해 1월에도 “내수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는 이유로 상반기에 재정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집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올해의 경우 상반기 ▲중앙재정 65% ▲지방재정 60% ▲지방교육재정 65%를 목표로 내걸었는데, 실제로는 모두 초과 달성(66.2%·60.2%·74.9%)했다. 전체 재정의 집행률은 63.6%로, 전년(61.2%)보다 더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정부 기여도는 1분기 0.1%포인트(p), 2분기 0%p로 거의 미미했다.

정부가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지난 2002년부터다. 재정의 ‘경기 대응’ 기능을 강화해 상·하반기 경기 변동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 하나의 목적이다. 특히나 상저하고 경기 흐름이 예상될 때 재정의 상반기 집행은, 상·하반기 과도한 경기 변동성을 보완해 주는 효과가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 ‘연말 밀어내기식 집행’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던 점도 이 제도 도입의 배경이 됐다.

해당 제도 도입 이후 2002~2024년의 상반기 재정 집행 목표는 한해도 빠짐없이 무조건 ‘50% 초과’를 내거는 것으로 굳어졌다. 목표치와 실적치가 꾸준히 우상향하는 흐름도 보였다. 2002년 당시 상반기 재정 집행 목표와 실적이 각각 53.5%, 48.8%였는데, 지난해의 경우 65%, 65.7%로 높아졌다.

재정 조기집행 목표 및 실적(왼쪽)과 상·하반기 경제전망 및 실제 경제성장률. /국회입법조사처 제공

하지만 이것이 ‘상저하고’ 경기 변동 대응이라는 기대 효과를 항상 충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4월 내놓은 ‘재정 조기 집행 제도의 경기 안정화 효과 분석’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제외) 상저하고로 전망하고 재정 조기 집행을 가속한 16개 연도 중 6개 연도가 실제로는 상고하저(上高下低) 흐름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조사처는 “결과적으로 재정 조기 집행이 경기 변동을 완화하기보다는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역대급’ 상반기 신속 집행률을 자랑한 올해 역시, 상고하저 흐름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우리나라 상반기 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8%, 하반기가 2.0%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작년 8월 당시 내놓은 전망(상반기 2.3%·하반기 2.2%)보다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특히나 지난해와 올해처럼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런 신속 집행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세수 펑크’가 56조원가량이었던 것에 이어, 올해에도 29조6000억원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집행할 돈이 부족한 데도 우선 ‘많이’ 집행한 상황이다 보니 하반기 재정지출 여력이 더 없어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상반기 신속 집행이 23년간 관행처럼 굳어왔지만, 앞으로는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박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경제 상황 추세와 상관없는 조기 집행 결정과 지속적인 목표 상향 설정은 오히려 경기 변동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 지출 중에서도 그 성격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 차이를 고려해 집행 시기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산 전문가는 “신속 집행이 전반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작년에도 세수가 부족해서 (SOC를 관리하는) 교통시설특별회계(교특회계)에서 하반기 강제 불용이 발생했다”며 “이렇게 되면 하반기 집행 여력이 과도하게 떨어져서 상·하반기 경기 균형이 깨져버린다. SOC 담당인 국토교통부에서도 사전에 이런 사항을 기재부와 조율해 조기 집행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조기 집행의 효과에 대해서부터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전문가는 “지방 재정 측면에서는 이 제도를 탐탁지 않아 하는 부분이 있다. 계약을 빨리 체결해서 선급금이라도 빨리 지급한다거나, 무리하게 공기(工期)를 단축한다거나 등의 부작용 때문”이라며 “신속 집행 제도를 연례적·형식적으로만 운영하지 말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자체의 의견을 듣고 경기 대응 효과가 실제로 있는지 여부를 이 기회에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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