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특집] "어느날 갑자기 미군 떠나면, 한국 독자적으로 버틸 수 있나"
"한동안 평화 유지됐다고 전쟁 가능성 망각하면 아주 어리석은 일"
[※ 편집자 주= 이번 특집은 10월 1일 국군의 날을 앞두고, 그동안 [삶] 인터뷰이들이 국가안보와 관련해 언급한 내용을 발췌해 묶은 것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조선을 지원하러 온 명나라 병사가 술에 취했고, 먹은 것을 토했다. 그걸 먹겠다고 아우성치면서 달려든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으로 굶주린 조선 백성들이었다. 1592∼1598년 임진왜란 당시의 이야기다. 그 전쟁으로 조선인 6명 중 1명이 숨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눈 속에서 갓난아기가 울면서 혼자 기어갔고, 다른 아기는 죽은 엄마의 젖을 빨았다. 젊은 엄마들이 청나라에 끌려갔거나, 저항하다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때 조선인 50만명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 도주하다 잡히면 발뒤꿈치를 절단당했다.
이들 두 전쟁에 공통점이 있다. 당시 조선의 정치인들은 동인-서인 등 패거리 권력 놀이를 하느라 국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백성들은 총과 화살에 맞아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두 전쟁에 차이점도 있다.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가 조선을 도왔으나 병자호란에서는 명나라가 그러하지 못했다. 자기들이 위험한 처지에 빠져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은 일본, 중국, 러시아도 아닌 동족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북한이 소련(러시아)과 중공(중국)의 지원을 받아 남한을 침략했는데, 그때 미군 지원이 없었다면 남한 사람들은 지금 북한 사람들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미군은 그때 이후 지금도 남한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미국 대통령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 내부 사정이나 국제 정세에 따라 언제든지 예상치 않은 변동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한국은 독자적으로 국토와 국민을 지켜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자체 생산하는 나라가 됐으며,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도 핵무기를 포함한 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나라이기 때문이다.
남한의 안보가 흔들릴 조짐이 약간이라도 있으면 경제는 곧바로 타격을 입는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자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외환시장, 주식시장이 요동칠 것이다. 당연히 실물경제도 큰 타격을 입는다.
정치권의 여야는 적어도 국방 문제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의 정치인들이 조선시대처럼 패거리를 이뤄 권력 놀이를 하면서 안보 문제를 소홀히 한다면 또다시 국민은 참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동안 전쟁이 없었던 것에 익숙해져서 '설마 전쟁이 일어날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치명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다음의 일문일답은 2022년 9월부터 시작된 연합뉴스 [삶] 인터뷰 가운데 안보 문제에 대해 언급한 내용만 발췌해 묶은 것이다.
소설 '인간시장' 작가 김홍신(전 국회의원)
- -본인의 작품 중 '대발해'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뭔가.
▲ 발해는 우리의 잃어버린 민족사인데, 이를 복원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당의 장군들이 황제 고종한테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 민족은 완악하고(사납고), 굴종할 줄 모르고, 반드시 독립하는 기질을 갖고 있으니 국서는 다 없애고, 사내는 모두 죽여버리고, 계집은 우리 군사들에게 위문품으로 나눠주십시요." 당나라 황제는 "그대들의 생각이 짐의 생각과 같다"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거란의 임금 야율아보기도 발해를 멸망시킬 때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발해 주민들은 섬으로, 산으로 피신해야 했다.
-- 우리 민족에게 이런 비극이 사라지려면 무엇보다 빨리 남북한 통일이 돼야 하는데.
▲ 통일은 가능하면 빨리 와야 한다. 민족이 갈라진 상태에서 100년이 넘으면 민족의 정기가 달라지고 식생활, 문화도 바뀐다. 삶의 방식이 달라지며, 언어도 변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통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통일을 이루려면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통일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 한국 주변의 강국들이 남북통일을 원할까,
▲ 현재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 모두가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본다. 통일 한국이 자신들의 안보 전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려면 국제 정세가 변해야 하고, 북한 주민들도 바뀌어야 한다.
-- 경제력도 통일에 중요한 변수가 되나.
▲ 지금도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크다. 한국이 90이라면 북한은 10도 안 될 것이다. 핵을 제외한 무기 체계는 99대 1로 북한이 열세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강한 경제 대국이 된다면 통일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경제력이 훨씬 커지면 우리가 북한을 도울 수 있고, 외교 강대국이 될 수 있기에 국제사회에서 협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 남한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남북한 모두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 돌발적 상황에서 실수라도 하면 문제가 크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야 하고, 빨리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 스웨덴은 복지가 잘돼 있긴 하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군사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어 국방 문제가 어려울 듯한데.
▲ 스웨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기 전까지는 200년 동안 중립국이었고, 강력한 국방력을 갖고 있었다. 인구 1천만명밖에 안 되는 나라가 군함, 전투기, 잠수함, 탱크의 제작에 뛰어났다. 무전기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런데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계기로 자주국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전쟁은 완전히 끝났고, 평화가 왔다고 오판한 것이다. 스웨덴은 항공대대, 포병대대, 미사일 부대를 해체했다. 야전병원 장비와 시설, 인적 자원도 정리했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보면서 재무장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문제는 재무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방 시스템을 해체하는 데 1∼1년 6개월이 걸렸다면 다시 무장하는 데는 10년 이상이 필요하다. 게다가 스웨덴은 초음속비행기와 미사일 등의 기술 개발에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나토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 스웨덴이 나토에 들어가면 안전한가.
▲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나토가 무조건 지켜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도 계속 자주국방의 노력을 해야 한다.
--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주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 북한은 핵 잠수함도 갖는다고 한다. 우리도 자체 핵무기 보유를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철수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에는 우리 스스로 버틸 수밖에 없는데, 그건 자체 능력으로 핵무장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6개월 만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이론일 뿐이다. 실제로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경우 완성하는데 적어도 3∼4년은 걸린다고 한다.
-- 우리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하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는 등 어려움이 많을 텐데.
▲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미국 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해시켜야 한다,
-- 한국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은 듯한데.
▲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오판해 남한을 침략할 가능성도 있다. 이때 미국은 두 곳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남한에서 미국 주도의 작전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까?. 미국은 대만에서 중국과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한반도를 방어할 수 있을까?. 미국의 지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 남한은 재래식 무기에서 북한을 압도하지 않나,
▲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량 살상무기 보유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재래식 무기체계에서 절대적 우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북한이 핵무기로 위협하면 속수무책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그걸 사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갖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적 수단이 된다.
--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추진한다고 해도 정치권과 국민의 의견이 엇갈릴 듯한데.
▲ 여야는 국민적 여론을 충분히 들어보고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적어도 안보와 외교 분야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생사를 가르는 국방 문제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한다.
-- 유럽의 정치인들은 국방 문제에 대해 협조를 잘하나.
▲ 서독은 여야가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에 통일할 수 있었다. 독일통일은 사민당의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시작했고, 기민당 소속의 헬무트 콜이 완성했다. 여야 간의 긴밀한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 추진도 여야 합작의 결과다. 나토 가입 전에 여야 대표가 함께 나토 훈련을 참관하는 등 정치권의 한마음이 국민들의 분열을 막을 수 있었다.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하면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 우리 국민들도 전쟁에 대비해야 하나.
▲ 전쟁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민방위 훈련을 충분히 해야 한다. 전쟁이 났을 때, 핵전쟁이 발생했을 때 생존에 필요한 파우치(Pouch·생존배낭)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스웨덴도 생존 파우치 만들기 국민 계도(啓導)를 얼마 전까지 진행했다. 이 나라 국민은 핵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피하는 방법에 대해 훈련도 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도 이런 훈련을 한다.
박찬종 변호사(전 국회의원)
--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 북한의 핵무기는 1차로 남한, 2차로 미군을 겨냥한 것이다. 한반도가 위험해졌다.
--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균형이 깨졌다고 봐야 하나.
▲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동해안에 핵잠수함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 탄도탄을 사이판이나 괌 근처에 떨어트리면 미군은 핵잠수함을 이용해 근거리에서 평양을 공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평양은 석기시대 수준으로 초토화된다.
-- 남한도 핵무기를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돼 있으니 핵무기 개발은 불가능하다. 한미 동맹을 통해 핵무기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 남북통일은 언제 이뤄질까.
▲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만약에 북한 김정은의 건강이 악화하거나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돌발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남북통일의 호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군이 북한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과 상호 방위조약을 맺고 있어서 비상시에 개입할 명분이 있다. 중국군 28만 명은 압록강과 두만강 접경지역에 포진해 있다. 갈수기에는 두만강의 깊이가 얕기에 중국군은 걸어서 북한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 겨울에는 얼음 위로 걸어오면 된다. 사실상 중국군은 북한에 주둔하는 것과 같다. 북한에 들어온 중국군은 북한 전역을 장악한 뒤 자신들의 괴뢰정권을 세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일 협상의 대상자에 중국도 들어가게 된다. 통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나.
▲ 원론적으로는 남한이 압도적 우위의 경제력과 민주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한의 우수한 정치, 사회, 경제적 시스템이 휴전선 넘어 북한에서도 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북한 주민이 남한 방식의 사회를 원할 것이다. 즉 북한 주민이 중국의 괴뢰정부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되도록 해야 한다.
탈북청소년을 위한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장
-- 북한 문제에 대해 정치권에 도움을 호소한 적이 있나.
▲ 미얀마의 아웅 산 수치 석방 운동 지지 선언을 부탁하러 정치인들을 찾아간 적이 있다. 이때 그들은 "미얀마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권이 무서워서 외칠 수 없으니, 밖에서 도와줘야 한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달 후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발표했다. 나는 같은 인사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더니 그들은 예상과 달리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북한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해야지 왜 밖에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정 간섭이라고 했다.
-- 남한에는 사상의 자유가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북한의 정치·경제ㆍ사회 시스템에 정서적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탈북 청소년들은 그런 사람들이 남한에 꽤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란다. 아이들은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그곳에 가서 살아보면 좋겠다. 북한이 보내주는 곳 말고, 내가 살았던 곳의 주소를 찍어줄 테니 그곳에서 한 달만 살아보고 그래도 좋다고 느끼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1주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 북한 당국이 안내하는 곳은 위장된 것인가.
▲ 어떤 아이는 청진시 아파트에서 살았다.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전시형 주택이었다고 한다. 외국인이 방문하면 아파트에 전깃불이 들어오지만, 그들이 떠나면 전력이 금방 끊긴다고 했다.
-- 탈북 청소년들은 남한의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박근혜 대통령 탄핵,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을 보면서 상당히 놀란 것 같다. 숙청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치 문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탈북 청소년들은 국민이 대통령과 정치인에 대해 욕하는 것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북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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