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끝나지 않는 날씨의 습격

이상희 기자 2024. 9. 3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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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한자를 꼽자면 '폭(暴)'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 직전엔 35℃를 넘나드는 '폭염'이 병충해를 확산시키고, 생육을 방해하고, 작물을 고사시켰다.

그 결과가 반복되는 폭우로 나타난 것이다.

폭우와 폭염, 그리고 가뭄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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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한자를 꼽자면 ‘폭(暴)’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성질이 사납다’ ‘모질다’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내내 농업 현장을 뒤흔들었다.

9월 중순께 1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벼를 쓰러뜨리고, 상추를 녹이고, 배를 떨어뜨렸다. 그 직전엔 35℃를 넘나드는 ‘폭염’이 병충해를 확산시키고, 생육을 방해하고, 작물을 고사시켰다. 이때 농가들은 이미 7월초 쏟아진 또 다른 ‘폭우’로 애써 키운 농작물을 깡그리 잃은 상태였다. 농민들은 불과 두어달 사이에 사납고 모진 ‘날씨의 습격’을 세차례나 감당해야 했다.

비단 이뿐만 아니다. 이상기후는 올해 내내 농민을 괴롭혔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사이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지속되면서 지역에 따라 일조량이 평년의 70∼80% 수준에 머무는 등 크게 부족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월동 작물에 피해가 발생했다. 멜론·참외·수박 등 시설작물에 착과·비대 불량, 곰팡이 발생 같은 피해가 속출했고 보리·사료작물 등은 습해가 심각했다. 마늘은 2차 생장으로 발생한 벌마늘 피해가 확산해 농가들을 힘들게 했다. 급기야 정부가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일조량 피해를 농업 재해로 인정하고 나설 정도였다. 이쯤 되면 농민들은 올해 내내 날씨와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앞으로 더 많이 자주 발생할 거란 예측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우리나라가 그 최전선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급격한 기온 상승 때문이다. 지난 100년 사이 지구 전체의 온도가 1.3℃ 오를 동안 우리나라는 두배 가까운 2℃가 올랐다. 심지어 계절 주기도 바뀌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100년 전에 비해 여름이 한달 늘고 겨울은 한달 줄었다.

그 결과가 반복되는 폭우로 나타난 것이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기 중 수증기 유입이 높아지고 그만큼 비가 잦아졌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강수 유무가 시기적·지역적으로 극단화되는 양상을 띠면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늘어나는 동시에 비가 아예 오지 않는 날도 늘어났다. 같은 시·군 내에서도 폭우가 오는 지역과 파란 하늘이 나오는 지역이 공존하는 일도 벌어진다. 폭우와 폭염, 그리고 가뭄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이 되고 있다.

현장의 농민들은 혼란스럽다. 이상기후가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올지는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서 날씨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농사를 짓는 일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전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날씨 앞에서 순응하는 것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1년3개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세차례나 폭우 피해를 입고 시설하우스에서 기르던 작물을 다 버려야 했던 전북 익산 농민들의 사례가 그 단적인 예다.

정부가 다른 어떤 문제보다 이상기후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날씨의 습격을 막을 해법에 농민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농업의 미래는 물론 안정적·지속적인 먹거리 공급도 보장할 수 있어서다.

사후 약방문식 보상이나 지원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피해를 당한 후에 보상해주는 정책보다는 피해를 당하지 않게 대비하는 게 올바른 정책”이라는 현장의 쓴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이상희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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