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그시절 한국 중고생 위로한 ‘문화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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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뉴진스'를 둘러싼 어도어와 하이브의 다툼을 보며 아이돌 음악과 상업적 성공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현재의 케이팝(K-Pop)은 X세대(197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던 보이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시작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전까지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한국 사회의 통념을 깼다.
케이팝이나 한류 같은 단어가 없던 30년 전과 비교해볼 때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춤의 형식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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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뉴진스’를 둘러싼 어도어와 하이브의 다툼을 보며 아이돌 음악과 상업적 성공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현재의 케이팝(K-Pop)은 X세대(197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던 보이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시작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정현철·양현석·이주노가 결성한 팀으로 정현철은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쳤고, 양현석·이주노는 서울 이태원에 있는 문나이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댄서였다.
정현철·양현석·이주노는 각자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정현철은 일본 록밴드 엑스재팬의 베이시스트 타이지(TAIJI)를 차용해 서태지로 예명을 짓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했다. 노래를 만들었던 정현철은 당시 DJ리믹스로 유명했던 유대영을 찾아가 1990년대 유행한 댄스리믹스 형식으로 편곡을 의뢰해 오늘날 케이팝의 효시 중에 하나로 일컬어지는 ‘난 알아요’가 탄생했다.
헤비메탈·랩·댄스가 접목된 ‘난 알아요’는 양현석과 이주노의 안무에 힘입어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이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 고통받던 한국 중·고등학생들에겐 희망 같은 존재였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도 대형 스타가 됐기 때문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전까지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한국 사회의 통념을 깼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표본이 이들이었으며 이때부터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했다.
한편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은 매번 100만장에 다다르는 판매량을 올렸다. 연말 각종 기관에서 발표하는 올해 최고의 히트상품 리스트에서도 빠지지 않는 괴력을 과시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구매자는 대부분 십대였는데 이때를 계기로 음반시장의 중심이 성인에서 십대로 옮겨갔다.
또한 양현석과 이주노의 안무는 훗날 케이팝에서 빠지면 안될 포인트 안무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회오리춤을 비롯한 각종 동작은 싸이의 말춤을 거쳐 전세계 사람들이 케이팝 군무를 따라 하도록 만들었다.
케이팝이나 한류 같은 단어가 없던 30년 전과 비교해볼 때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춤의 형식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지나치게 상업적인 면이나 성과가 더 주목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해주는 음악의 본질적인 역할이 부각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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