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오라이언의 출시, 신기술과 박물관 콘텐츠
지난 9월25일 메타(Meta)는 AR(증강현실) 스마트안경 '오라이언'(Orion)을 공개했다. 메타 설립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오라이언이 스마트폰 다음의 컴퓨팅 디바이스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AR 기기의 개발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Hololens), 구글의 '구글글래스'(Google Glasses) 등 몇 개 기기가 이미 몇 년 전부터 굴지의 IT기업 주도로 개발, 출시됐다.
그럼에도 오라이언의 출시가 주목받고 제작사 메타는 물론 우리나라의 AR 관련 기업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AR 기기와 차별되는 기술적 진보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오라이언은 소형 프로젝터가 렌즈에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이용자가 투명한 렌즈를 통해 바로 실물을 볼 수 있도록 했으며 장비는 훨씬 작고 가벼워졌음에도 화각을 70도까지 확장했다. 또 신경 인터페이스 손목밴드를 채용해 작은 손동작으로도 기기를 제어할 수 있게 해줬다. 즉 더는 안경에 달린 카메라가 내 손동작을 인지할 수 있게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다.
AR 기술은 실재하는 사물에 이미지와 정보를 추가할 수 있어 여러 박물관도 이에 주목한다. 일부 박물관은 기술발전과 새로운 장비 출시에 맞춰 실험적인 서비스를 선보였다. 영화 '아이언맨'이 개봉했을 때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토니 스타크가 자신의 상태와 주변 상황을 체크하듯이 관람객도 웨어러블 기기로 전시품의 정보를 얻는 경험을 상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시도들은 미미한 성과에 그쳤다. 이는 오라이언의 출시로 다시 논의되는 기존 기술의 한계와 맞물려 있으며 장비도입 비용, 유지보수 문제, 빈약한 콘텐츠도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이 문제였을까.
1970년대 어린이잡지에서 자주 다룬 주제 중 하나는 30년 뒤, 혹은 반세기 후 과학기술이 변화시킬 미래의 모습이었다. 그중에는 우주 단체여행이나 수중도시처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도 있었고 홈오토메이션처럼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구현된 것도 있다. 실현되지 않은 기술의 경우 기술부족이나 비용 대비 효과의 미미함이 원인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애당초 필요 없는 기술이 아니었나 싶은 것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끼니를 대신할 영양소가 담긴 알약을 들 수 있다. 요즘처럼 맛집 탐방이 일상화한 사회에서는 인간의 식도락 욕구를 고려하지 않은 기획이었던 셈이다.
오라이언이 진정으로 극복해야 할 장벽은 기술적 한계뿐만이 아니다. 오라이언의 경쟁상대로 지목된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휴대성이다. 쉽게 소지할 수 있고 또 필요하지 않을 때는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둘 수 있다. 그러나 웨어러블 기기, 특히 안경은 다르다. 인류는 시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경을 개발했지만 동시에 그 안경을 벗기 위해 오랜 노력을 기울였다. 소프트렌즈, 라식, 라섹 등 안과 수술이 그 대표적 결실이다. 오라이언을 비롯한 AR 안경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안경 착용의 불편함을 상쇄하고 그것을 충분히 보상할 수 있을 정도의 효과, 즉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전 일장춘몽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3D TV와 입체 안경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오라이언과 같은 AR 안경의 발전은 미래의 컴퓨팅 기술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일상생활이나 박물관의 서비스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혁신뿐만 아니라 혁신에 부합하는 콘텐츠, 그리고 사용자의 불편함을 넘어설 수 있는 실용성까지 모두 고려돼야 한다. 기술이 주는 신기함은 이목을 끌지만 순간이다. 박물관은 그 순간을 넘어 지식이나 감동을 제공해줘야 한다. 시장통 순댓국집이 자랑하는 것이 일순간의 고린내가 아니라 그곳에서 내는 고기맛이듯 말이다.(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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